남풍에게

                                                                       권용태

겨우내

굳어버린 나뭇가지에서

남풍은 되살아나

싱싱한 아침의 모습으로

고향의 봄을 맞는다



꽃눈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산곡(山谷)의 어느 여울목에서

남풍은

바다의 노을처럼 경이로운

메아리로 피어난다


남풍은

밀림으로 통하는 카니발의

해안통을 따라

사랑의 유적을 방황하다가,

나의 부끄러운 의식으로

비산(飛散)해 가는 종소리가 아닌가


기(旗)가 펄럭일 때마다

남풍은 울었다

성(城) 을 쌓고 비(碑)를 세우고

싶은 언덕에서.


남풍은

내 일과가 시작되는 아침 나절

이 우울한 살롱에 들러

계절의 언어를 나누고 돌아간다.


남풍은

조용히 음악을 다스리는

수목(樹木) 곁에서

사과나무를 기어오르는

다갈색 손짓을 남겨둔 채

떠나간

초록 댕기 같은 그런 유흔(遺痕) 같은 거.


여름날

출구를 잃은 바람은

그리운 밤의 체온 속을 돌아나오다가

굳어버린 수목들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연인들의 뜨거운 가슴속에

소낙비를 뿌리게도 하고,


남풍은

나뭇가지에 걸려

다 해체되어가는

포플러 같은 손을 흔들며

소리없이 떠나간

봄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