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전사의 무덤앞에

                                  - 유엔묘지에서-

                                                                                                              노천명

사나운 이리 떼 사뭇 밀려와

아무  영문도 모르는

정녕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있던

평화스러운  양(羊)의 우리를

뛰어넘어 들던 날-


죄 없는 백성들 처참히 물려 러지고

포악 잔인한 앞에 어미는  자식을 감추고

아내는 남편을 감추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저 멀리 몇 천만리 밖

아름다운 농원에서 일하던 이들

첨탑이 높이 선 대학의 청년들이

분노에 떨며 군복을 갈아입고 뛰쳐나와


아세아의 한 끝 코리아를 찾아서,찾아서

구름을 헤치고 바람을 밀치며

하늘이 까맣게 달려와 주었나니

일찍이 이방인의 모습이

이렇듯 반가운 적이 이었으랴

우리를 살리려온 그대들은 바로 천사였어라


태평양을 건너 낯설고 빈한한 이 땅

별로 아름답지도 장하도 못한 건물을

총 들고 지켜주는 이역(異域)의 아침은

얼마나 어설펐으랴

홈식이 뭉클 치밀 때마다

보다 준엄한 정의가 있었다


이제 그대 영원한 평화의 사도되어

동양 한구석 코리아에 조그만 면적을 차지하고

들국화에 싸여

푸른하늘에 안겨

여기 누웠나니


그 그대의 이름을 모르건만

이슬 젖은 돌 십자가에 조용히 이마 대며

지극히 경건한 마음 하고 엎디어 절하노라


한국 전장의 이름없는 전사여

편히 쉬시라!

훈장 대신 가슴엔 별을 차고

그대 길이 땅 위의 평화를 지키는 자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