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김광석

여름 하늘이 밀리면서 훤해지는

가을 높은 하늘에서

흰 빛깔이 내리니

젊음과 꿈의 푸른빛이

멀리 건너편으로 날린다

천지 허전하여

귀뚜라미 마루 밑으로 기어들고

가뭄에 시달린 가마귀들 빈 밭에 모여서 운다

서풍 찬 바람에 나무 잎새들이 힘없이 진다

장미 꽃잎이 우시시 지는 소리에 가슴이 울린다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을 따라가는 것이 더 많다

갈대와 같이 조용히 생각하는 철

돌도 생각에 잠든 빛

산이 익어서

산마다 단풍이 들며 단풍이 빨갛게 타서

풀지 못한 염원의 제석(祭石)위에

피를 흘리며 뒹군다

기러기가 칼칼울며 고향 하늘을 향해 간다

따라 못 가는 서러움

꽃보다 짙은 단풍의 강토

싸늘한 바람과 가냘픈 햇빛에

뉘우치며 혼자 생각하는 가을

잊어버린 노래가

구름에 흘러가는

병든 향수의 길

서러운 세월이 가고서도 서러운 세월이 겹쳐서

인간 천년의 꿈이

한 마리 산새만도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