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풀잎이 아름다운 것은, 아침 이슬의 영롱한 영혼 때문일 것이다. 시란 예술의 꽃이 고요한 아름다움인 것도, 우주와 소통하는 영혼이 사물을 사색하고, 흩어진 언어를 모으고 ,감정의 깊은 비밀을 찾아내어, 돌아보고, 살펴보며, 나아가는 흔적에서 사람의 향기가 나기 때문 일 것이다.



52회 문학회는 어느 때 보다도 그 향기에 마음껏 젖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분이 바로 정호승 시인님이다.


'시를 발견하는 기쁨'이란 제목으로 문학 강연의 장을 열었는데,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어떤 대상을 사랑 할 수 있듯이, 시도 사랑할 줄 아는 마음만이 시를 사랑할 수 있다며, 음악은 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는 간혹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시는 삶의 양식이라고 단정하며 시를 모르고 살기 때문에 그 영혼이 배가 고플것이다 라는 일반적인 견해도 말씀 하셨다. 또 시인으로서 시를 발견하는 마음의 눈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정시인님 자신의 시를, 예로 든 강의가 이어졌는데 향기 은은한 시의 깊은 숲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허물

  

느티나무 등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때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

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이 시는 매미라는 곤충을  통해, 매미의 허물이 살아 있다는 가정 하에 시로 형상화 시킨 것인데, 매미허물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왜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가? 허물과 매미의 관계 즉 매미와 나와의 관계, 나는 누구의 허물이 될 것인가? 매미 허물과 나와의 관계를,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로 연장시키는 구체적인 생각으로 한 편의 시가 완성 되었으며, 시는 사물을 통한 이야기로 구체적으로 써야한다고, 그렇게 할 때 관념적이고 추상적일 때 보다 쓰기도, 이해하기도 쉽다고 하셨다.

  

  

나팔꽃

  

한쪽 시력을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식탁위에 있던 까만 나팔꽃 씨를 부친께서 환약으로 알고 드시려고 한 모습을 보면서 쓴 시인데, 이것은 드셨다라고 단정 하는 데서 시가 시작되었고 마지막 행에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는 부모의 종말을 미화 시킨 것 이다. 라고 하셨다.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 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시 못은, 공중목욕탕에서 시를 발견한 예라고 했는데 인생이라는 벽에서 삶의 무게를 견뎌 내었던 못은, 곧 부성에 대한 잔잔하고 깊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포옹

  

뼈로 만든 낚싯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이 시의 소재는 신문의 기사로 실렸던, 사진 속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된 신석기 시대 부부의 모습을 보고, 우리 시대의 사랑은 무엇일까? 를 생각 해 보는데서 시작 되었고, 의미를 부각 시켜서 한 편의 시로 창조한 것이라고 하셨다. 이 포옹은 아홉 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포옹이라는 자체는 두 팔로 안음 즉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따스한 사랑의 의미이기도 할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 시는 익히 알고 있는 시이므로 생략을 하고 시인님 생각의 발자취를 옮겨보기로 한다. 시 속에는 그늘이, 눈물이 있다. 인생이란 삶의 대지에 햇빛만 있으면 사막이 된다고 하셨다. 비바람, 눈보라가 숲을 자라게 하며, 그랬을 때에 새도 날아오고 별도 쉬어간다고 하셨다. 절망의 눈물 언덕에서도 다른 사람이 쉬어 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타인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은 사랑도 있다고 했다. 이 시는 노래로 만들어지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시가 있고, 시를 쓴 시인이 있고, 노래가 있을 때 시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경험하게 되었다.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이 시는 수선화를 빌려와서 이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 외로움을 형상화 시킨 시라고 하셨다. 이 수선화에게도 노래와 함께 감상을 하니 울림이 컸다.



시인께서는, 시는 인간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고 강연을 마무리 했다. 정시인님 시는 대중들이 많이 사랑한다. 시에 사람 내음이 진하게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또한 아홉 번째 시집 포옹를 발표하면서, 시집을 그릇에 비유하고, 그 그릇이 빈 공간이 없어서 행여 아무것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꽉차 있는 건 아닌지 부끄럽고 염려스럽다는 마음을 밝혔는데, 그 내용을 읽고, 별빛 같은 마음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배고픈 영혼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그 양식을 만들어 내는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회원님들도 배고픈 영혼을 위한 양식을 많이 생산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부회장 정소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