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고

가장 진실된  감정의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아름다운  정서와 고귀한 정신으로

시가 탄생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에 지쳐

힘겨운 인생의 무게로 하여금

애송시  한편 찾아 시의 향기를 느끼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김문중 회장님의 말씀으로  문학회 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서 추천시 낭송이 있었습니다

노래여 노래여  .........................................이근배 ..시.............성인 산승.. 낭송

우리들의 8월로 가자 ..............................김기림...시 .............. 김건수 .......낭송

마법의 새..................................................박두진..시...............강복자....... 낭송..

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 .시...............허   진.........낭송

그 하늘이 열리고.....................................김기림.시................정영기........낭송

 

아름다운 낭송 감사했습니다.

 

다음은 시가곡 합창으로 이어졌습니다 .

이어진 시가곡 합창 은  문학회를 빛내주는  멋진 시간 이었습니다

반주  ... 박시인   아티스트

지휘..  신아름   아티스트

 

산길...................... ....................  황금찬 시  ............   김현재.. 낭송 

영혼 이야기  ........................   . 김문중 시   .......       최해연. 낭송

가을   .........................................성기조 .시.............   .이명주 낭송 

 

국화옆에서................................서정주 시..............  이수익 작곡

축배의 노래 .......          La Traviata (Giuseppe Verdi. 고진숙역사

 

너무나도 아름다운 노래의 하모니가 하늘에 울려퍼지는 시간 이었습니다

 

특별출연  

아티스트 신아름 ..........홍금자 시 .........................사랑의 나무

너무도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 감사이 감사했습니다.

 

이어서  황금찬 선생님의 문학강연이 있었습니다.

 

 김기림 [ 金起林 ]

호는 편석촌(片石村). 1908년 5월 11일 함북 성진 출생. 1915년 임명(臨溟)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 상경해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중퇴한 후 1930년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를 지내다가 1931년 낙향하여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1939년 토호쿠제대(東北帝大) 영문과를 졸업한 후에는 다시 조선일보사 기자를 지냈다. 1942년 경성중학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다가 광복 후 상경해서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후 사망했다. 1931년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시 「고대(苦待)」(1931), 「날개만 도치면」(1931)을 발표한 후, 시 「어머니 어서 일어나요」(1932), 「오 어머니여」(1932), 「봄은 전보도 안치고」(1932) 등을 발표했다.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상(李箱)과 함께 당시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활약했다. 이양하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특히 I. A. 리차즈의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정립했다.
「현대시의 기술」(1935), 「현대시의 육체」(1935),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1939) 등 주지적 시론과 「바다의 향수」(1935), 「기상도」(1935) 등 중요한 시들을 계속 발표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시부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문학인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 수필집 『바다와 육체』(1948), 평론집 『문학개론』(1946), 『시론』(1947), 『시의 이해』(1949) 등이 있다. 1988년 심설당에서 『김기림 전집』이 출판되었다. 김기림의 문학적 활동은 창작과 평론 활동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감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새로움의 추구로 요약된다. 그는 과거의 시들이 감상주의에 사로잡혀 허무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강하고 명랑한 ‘오전의 시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김기림이 근대화와 그에 따른 물질문명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써, 시에서 역시 밝고 건강한 시각적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초기의 김기림의 시들은 『태양의 풍속』에 수록되어 있다.
중기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불안사조의 유행과 근대화의 허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식인으로서의 자각을 보여준다. 김기림은 시각적 이미지 또는 회화성만을 추구하는 시는 또 하나의 순수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시는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때 시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산물인 인텔리겐챠로 파악되며, 대중에게 시대의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장시 「기상도」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후기의 작품은 광복을 전후한 시기로서, 이때 김기림은 문학의 사회 참여를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고 있다. 그가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고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글을 발표한 것은, 시대정신을 전달하는 것을 시의 목표로 설정했던 중기의 입장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광복기를 시인이 공동체 속에서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바다와 나비』에서 보였던 우울하고 개인적인 성향 대신 『새노래』에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강하고 희망찬 의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정부 수립과 더불어 전향을 한 후에는 자신의 시론을 정리하고, 『문장론 신강』 등의 문학이론서를 내기도 했다.

사람은 남이 듣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때 시가 된다

시는 예술중에 예술이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선 그 시만 생각한다

사물을 볼 때 그냥 지나지 말고 누구도 하지 않은 말로 표현하자.

황금찬 선생님은 김기림 선생님의 좋은 시와 시인의 업적을 말씀하시며 문학회를 빛내주셨습니다

늘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백양문학회 시인들의 자작시 낭송이 있었습니다

거침없이 떠오르는 시어에 낭송이라는 아름다움이 더해져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기승을 부리던 여름도 지나가는 날 들입니다.. 언제나 빛이 되어 주시는 황금찬. 선생님 . 김문중 회장님게 감사드립니다

여러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우리 백양문학회. 한국 시낭송가 협회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가을의 초입에서 늘 함게하시는 선생님들게 늘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가을 문학회에서 다시뵙습니다^^** 사랑합니다^^**

 

              ^^**  사무국장 최해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