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박 두 진    


눈 같이 흰 옷을 입고 오십시요.
눈 위에 활짝 햇살이 부시듯
그렇게 희고 빛나는 옷을 입고 오십시요.

달 밝은 밤 있는 것 다아 잠들어
괴괴-한 보름밤에 오십시요...
빛을 거느리고 당신이 오시면,
밤은 밤은 영원히 물러간다 하였으니,
어쩐지 그 마지막 밤을 나는, 푸른 달밤으로 보고 싶습니다.
푸른 월광이 금시에 활닥 화안한 다른 광명으로 바뀌어지는,
그런, 장엄하고 이상한 밤이 보고 싶습니다.

속히 오십시요. 정녕 다시 오시마 하시었기에,
나는, 피와 눈물의 여러 서른 사연을 지니고 기다립니다.

흰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맞으오리니,
반가워, 눈물 머금고 맞으오리니, 당신은,
눈같이 흰 옷을 입고 오십시요.
눈 위에 활작 햇살이 부시듯,
그렇게, 희고 빛나는 옷을 입고 오십시요.


박두진 [朴斗鎭, 1916.3.10~1998.9.16]  

1916년 3월 10일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호 혜산(兮山).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1946년부터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래,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세대·우석대·이화여대·단국대·추계예술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역임. 저서에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문학전집》 등이 있다.


[박두진의 시 세계]

평생을 지고한 윤리의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우주의식 속에서 살다 간 혜산의 ‘휘황한 빛’의 세계는 한국 문학사나 정신사 속에서는 매우 개성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세계다. 그의 시 세계 앞에서 한국 문학사나 정신사는 그 전통적인 ‘어둠’의 정신과 ‘음’(陰)적인 달빛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한국의 전통적인 ‘달빛’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그 나름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을 테이지만, 한편으로는 ‘양’(陽)적 세계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상에 언젠가 내릴 천상의 세계가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인에게 ‘휘황한 빛’의 세계이다. 박두진은 모든 어둠과 그림자로 상징되는 인간의 나약성과 무지와 어리석음을 완전히 태워 내는 절대 정화의 빛, 천국의 빛을 휘황하게 노래함으로써 예언자적인 시적 이력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