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월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이 작품은 세련된 시어를 사용하여 순수한 산수의 서경과 인간 본연의 근원적 애수를 노래한 목월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민요풍의 서정시이다. 7·5조를 바탕으로 기·승·전·결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시는 어느 산 속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보여 주면서, 그 속에서 눈 먼 처녀의 애뜻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이따금 꾀꼬리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오는 어느 한가로운 윤사월의 대낮, 노란 송화 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외딴 봉우리 한구석에는 산을 지키는 산지기의 집이 한 채 외롭게 서 있다. 그 집에는 산지기의 딸인 듯한 눈 먼 처녀가 살고 있는데, 모춘(暮春)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없는 그녀는 문설주에 기대어 꾀꼬리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고 있다.
이 작품의 모티프는 '송화 가루'와 '꾀꼬리', 그리고 '눈 먼 처녀'이다. 그런데 '송화 가루'는 시각적인 것으로 '눈 먼 처녀'와 직접적인 상관 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데, 이 양자 사이에 교량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꾀꼬리'의 울음 소리이다. 꾀꼬리의 울음에 의해서만 '눈 먼 처녀'는 윤사월의 무르익은 정경 속에 용해될 수 있기에 꾀꼬리의 울음은 바로 그녀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외딴 봉우리'·'외딴 집'·'눈 먼 처녀'라는 세 가지 비극적 소재로 배합된 이 작품에서 '눈 먼 처녀'는 내면적 설움과 고뇌의 소유자로서 작품의 중심을 형성하며 한국적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 있는데, 그녀의 가련함에서 더욱 깊은 고적감, 비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송화 가루'는 후각과 시각을 함께 드러내는 시어로 그것의 주된 색조는 '노랑'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고적한 배경과 어우러지면서 토속적, 향토적인 애수와 고독을 더해 주고 있으며, 또한 꾀꼬리의 노란색과 결합되어 식물을 매체로 한 상상력과 동물을 매체로 한 상상력이 한국적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선명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

출처- 김태형,정희성 엮음 -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문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