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시인 호셀 리살(1861~1896) '나의 마지막 작별







                리잘이 사형되기 전날 포트 산티아고 감옥에서 쓴 그의 가장 유명한
                걸작 시. 마지막으로 면회를 온 여동생 트리디나드에게 기념품으로
                준 작은 알콜 난로 속에 시를 적은 종이를 넣은 리잘은 여동생에게
                스페인 간수가 못 알아듣도록 영어로“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다“
                (There is something in it.)고 이야기했다 한다. 죽음을 하루 앞둔
                극한적인 상황에서 태어난 이 시는 지금 15개 국어의 번역시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리잘은 이 시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으나 후일 사람들이
                “나의 마지막 작별”로 이름 붙였다.







잘 있거라, 내 연모하는 조국이여.
태양이 감싸주는 영토여.
내 슬프고 억압된 목숨을 내 너 위해 바치리니
오로지 네 생명이 더 밝고 신선하고 축복된다면
나는 너의 복지를 위해
나의 생명을 최후까지 바치리니.


많은 이들이 한 올의 괴로움도 망설임도 없이
싸움터 전장의 격동속에
그들의 목숨을 너에게 바쳤나니
사이프러스 우거진 곳, 월계, 흰 백합,
교수대 너른 평원, 순교자가 숨진 곳,
고향과 조국을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상관않으리.


어둔 밤 지나고 환한 동 터올 무렵,
하늘녘 아스름한 빛 보며 나는 죽노라
그 이른 새벽 한 줄기 여명에
조금의 빛이 더 필요하다면
알맞은 순간에 나의 피를 함께 흩뿌리어
너의 새벽 빛이 좀 더 환히 빛나게 해주렴.


나의 꿈은, 어린 사춘기 소년이었을 때나
지금 혈기 넘치는 한 젊은 몸으로서나
오직 동방의 진주인 너를 보는 것이었노라
너의 검은 눈물 걷힌 눈으로
한점 구김도 주름살도 부끄러움도 더러움도 없이
드높이 우러러보는 너의 부드러운 눈매
너 동방의 보석을 보는 것이었노라.


내 생애의 환상, 내 애절하고 뜨거운 욕망은
내 영혼으로부터 -- 곧 너를 떠나야 한다만
저 가슴 깊이 소리쳐오는
너 위한 “만세!”였노라.
“만세!” 네가 곧 이룰 승리를 위해
스러짐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너에게 생명을 붓기 위해 죽어 네 하늘 아래 숨지어
너의 신비로운 대지 아래 잠듦은
아! 얼마나 행복스런 일이냐.


먼 훗날, 네가 내 무덤, 잡초 무성한 사이
가냘픈 한 작은 꽃을 본다면
너의 입술 가까이 올려 나의 영혼에 입맞춰달라.
차가운 무덤 아래 내 눈썹 가까이
너의 따뜻한 입김과 부드러운 한숨을 나는 느끼리니


부드러운 달빛과 조용한 빛으로 나를 비춰주렴.
내 무덤가를 지나며 한숨짓는 바람 속에
화사히 밝아오는 새벽빛을 보내주렴.
어느 새 한 마리 내 무덤 십자가에 앉는다면
그 새가 내 영혼 위한 평화의 노래 부르게 해주렴.


불타는 태양으로 빗방울을 증발시켜
그 뒤에 숨은 내 함성으로
순수의 하늘가로 돌아가게 해주렴.
어느 조용한 오후 누군가 저 먼 세상 있을
나 위해 기도한다면 아, 나의 조국이여.
하느님 품 안에 내 쉬도록 기도해주렴


불행히 죽어간 이들을 위해 기도해달라.
비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죽어간 그들을 위하여
고난 속에 울부짖는 가여운 어머니들을 위하여
고통 속에 뒹구는 포로들, 과부와 고아들을 위하여
그리고 너희도 너희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


어두운 밤이 묘지를 덮어
오로지 죽은 자들만이 혼자 남아 밤을 지킬때
그들의 휴식과 비밀을 방해하지 말아달라.
네가 밤 어디선가 하프와‘샐터리’의 멜로디를 듣는다면
사랑하는 조국이여
그것은 바로 슬피 노래 부르는 나이리니.


그리하여 묘지 십자가로도 비석으로도
내 무덤조차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게 될 때면
그곳을 삽으로 갈아 온 사방에 흩뿌리어
내 육신의 잔해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을 때
그 재가 내 조국 온 대지에 고루 덮이게 해달라.


그러면 네가 나를 잊는다 해도 그것을 묻지 않으리니
너의 대기와 하늘과 골짜기마다 나는 휘돌며
너의 귀에 울려퍼지는 맑은 소리가 되리니
향기, 빛살, 색깔, 속삭임, 노래, 깊은 신음.
그 모든 것은
바로 끊임없이 울리는 내 영원한 신념의 정수이리니.


내 동경하는 나라
내 무한히도 그리는 사랑하는 필리핀이여!
들어라, 아, 나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그대들 모두 두고 나는 떠나노라.
나의 부모, 내 사랑하던 이들, 나는 가련다.
거기 노예도, 독재자도, 사형집행자도 없는 곳으로
아무도 신앙을 죽일 수 없고
오로지 하느님 혼자 다스리는 곳으로


안녕! 설움의 땅에 남은 부모님이여, 형제들이여.
내 사랑했던 연인이여, 내 어릴 적 친구들이여
이 피곤한 생에서 내가 휴식하게 됨을 기꺼워 해달라.
잘 있거라. 친절했던 나그네여, 내 길 밝혀주던 친구여
잘 있거라. 내 모든 사랑했던 이들이여.
죽음은 곧 휴식일지니.

































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