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자가 아는 진실


                       신 현 림

담배불을 끄듯 너를 꺼버릴 거야
다 마시고 난 맥주 캔처럼 나를 구겨버렸듯
너를 벗고 말 거야
그만, 너를, 잊는다,고 다짐해도
북소리처럼 너는 다시 쿵쿵 울린다


오랜 상처를 회복하는 데 십년 걸렸는데
너를 뛰어넘는 건 얼마 걸릴까
그래, 너는 나의 휴일이었고
희망의 트럼펫이었다
지독한 사랑에 나를 걸었다
뭐든 걸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네 생각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어디에나 있었다 해질녘 풍경과 비와 눈보라,
바라보는 곳곳마다 귀신처럼 일렁거렸다
온몸 휘감던 칡넝쿨의 사랑
그래, 널 여태 집착한 거야


사랑했다는 진실이 공허히 느껴질 때
너를 버리고 나는 다시 시작할 거야    

       -<세기말 블루스>(1996)

@ 핵심 정리

·주제: 이별의 고통과 새로운 삶에의 의지

·특징: ① '이별-사랑-이별'이라는 순환 구조를 보이고 있다.

② 감각적 표현과 쉼표의 독특한 활용으로 감정의 기복을 잘 드러내고 있다.

@  시상의 전개 과정

  1 연 : 이별에 대한 강한 의지

  2 연 : 이별의 의지와 사랑에 대한 미련

  3 연 : 열렬했던 사랑의 추억

  4 연 : 사랑의 실체가 집착임을 깨달음

  5 연 :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

@ 시상의 흐름

[1연] 담뱃불을 끄듯 너를 잊어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나겠다는 화자의 굳은 의지를 밝힌 셈이다.(그러나 담배는 중독성이 있어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2연] 네가 나를 다 마시고 난 맥주 캔처럼 구겨버렸듯, 나도 너를 잊어버리겠다고 다짐한다. '그만, 너를, 잊는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북소리처럼 너는 다시 나의 마음을 울린다.(사랑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보이고 있다.)

[3연] 오랜 상처를 치유하는데 10년이 걸렸는데, 너로 인한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당연히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요.) 그래.(여기에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비장한 결의를 함축하고 있다.) 지난 날 너는 내 마음의 안식처였고, 삶의 희망이기도 했다. 그 열렬한 사랑에 나는 목숨을 걸었다. 사랑이 아니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네 생각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그만큼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4연] 너는 어디에나 있었다.(나는 어디에서고 너를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었다.) 열렬히 너를 사랑했던 지난날에는 해질녘 풍경 속에서도 너를 생각했고, 비와 눈보라가 몰아쳐도 너를 생각했다. 온몸을 휘감던 칡넝쿨같이 너에 대한 생각으로 헤어나질 못했다. 그래. 너를 여태 집착한 거야.(너만을 향한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토록 열렬했던 사랑의 실체가 사랑에 대한 집착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다.)

[5연] 지난 날 너를 열렬히 사랑했다는 사실이 사랑에 대한 집착에 지나지 않는 공허함으로 느껴질 때, 나는 너를 버리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거야.(사랑의 아픔을 딛고, 곧 집착에서 벗어나 새 삶을 펼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다섯 연으로 짜여져 있다. 각 연은 '1행-4행-7행-4행-2행'과 같이 한 행에서 일곱 행으로 점점 길어지다가 다시 두 행으로 압축되고 있다. 여기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한 행이나 두 행의 짧은 시행에서는 이별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나, 시행이 점점 길어질수록 열렬했던 사랑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1연에서 이별에 대한 굳은 다짐이 2연에서 사랑에 대한 미련으로 발전하고, 3연에선 지독한 사랑의 추억으로 치닫는다. 다시 4연에서 시행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열렬했던 사랑의 실체가 하나의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보인다. 5연에서 화자는 사랑에 대한 집착이 한갓 공허한 것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한다.


신현림(1961∼ ) 경기 의왕생. 아주대 국문과 졸업. 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1994), <세기말 블루스>(1996), <해질녘에 아픈 사람>(2004) 등과 함께 사진작가 및 번역가로 활동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