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시 - 시의 세계
시 한편 한편이 님에게 희망의 선물이 되길 소망합니다.
글 수 337
천년의 잠
오세영
강변의 저 수많은 돌들 중에서
당신이 집어 지금
손 안에 든 돌,
어떤 돌은
화암사(禾巖寺) 중장 마타전(痲陀殿)의 셋째 기둥 주춧돌로
놓이기를 바라고
어떤 돌은
어느 시인의 서재 한 귀퉁이에 나붓이 앉아
시가 씌어지지 않는 밤, 그의 빈 원고지 칸을
지키기를 바라고.
또 어떤 돌은
어느 순결한 죽음 앞에 서서 만대(萬代)의 의(義)를 그의 붉은
가슴에 새기기를 바라지만
아, 나는 다만 당신이
물수제비 뜨듯 또다시 강가에 나를
팽개치지 않기만을.....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천년의 잠은
죽음보다 더 잔인할지니
흙 위에 엎드려 잠들기보다는
금류 속의 일개
징검다리가 되리라.
그러므로 님이여, 장난삼아 던질 양이면 차라리
거친 물살에 던지시라.
그리하여 먼 후일 당신이 다시 찾아 오시는 날
나는 즐겨 내 몸을 당신 앞에 바치리니
당신은 주저 말고 내 등을
밟고 건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