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사람

                                   이기철 / 낭송 / 황성호 

 

납가새 조개풀들 우거진 채 하늘 가려

홀로 애처로운 향초 잎 내밀 하늘이 없다

자락마다 못에 찔린 슬픈 꿈들을

온 아침 새로 내린 이슬 한 방울로 씻는다

 

미농지 같은 봄풀이 사나운 억새 되기까지는

경건한 귀를 가진 시인이여, 유독 나무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대 가슴 좁아 저토록 풍만한 여름 다 껴안지 못해도

수천의 잎사귀로 대지 위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저 뿌리의 땀 밴 노동을 그대 아니면 누가 노래하리

 

낙타 등같이 굽은 산 아래

제 아이 이름 부르듯 풀이름 부르며 사는 사람이여

봄날은 항상 고통으로 다가와서

계절을 펄펄 끓여 놓고 떠나지만

이마 맞댄 처마들 낮아 그 아래 신발 벗어 놓고

잠드는 사람이란

무 배추의 연명 아니면 날선 고통들 어떻게

제 몸 지켜 쓰다듬을 수 있을까

 

내 먼지 묻은 소맷자락으로 눈물 닦아

그 먼지 눈시울에 다시 묻혀도

사람들이 지나간 길에 남루와 증오 대신

따스한 노래 한 가닥 남을 수 있기를,

귓전을 스치는 노래 한 가닥이면

삶의 잉걸불에 데인 몸에 새살 돋을지니

 

나는 노래 부르는 사람

오늘 저녁 한끼 식사도 추청쌀 한 움큼 솥에 안치며

그 아궁이의 불빛에 낯붉히며 노래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