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미 부로치


쪽창 하나 없는  방, 가로세로 줄 엮은 그들의 방은
끈끈한 미끼가 있었지
그 방 음침한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출렁이고 있어
그 자식들, 여린 것의 심장 파먹으며 히히덕거렸지

검은 명주실 고양이 환장할 것 같은 푸른 눈의 살기
내게로 뻗어와 목 졸라매고 여기저기 멍든 상처
난 한 마리 하혈하는 파랑새가 되어버렸어

그 순간 나, 거미줄의 숨결 뽑아버리기로 했지
내가 들고 있는 엉성한 빗자루였지만 한번 스칠 때마다
그들의 방은 무너져 버렸어
무너진 방에서 그때 빠져나온 거미 한 마리
내 코트 깃에 악착같이 달라붙는 거야

나는 외출할 때마다 거미 부로치 달고 다니지
나를 향해 작살 내리꽂는 금빛 거미 부로치



*2 수의 입은 미꾸라지들


수의 입은 미꾸라지들 하얀 쟁반 위 줄지어 있다
그들 가슴 벙싯 솟아올라 봉분 쓰고 누워
몇 겁 생을 매단 그들의 보금자리 생각하고 있는지
뜨겁게 몸 달구던 절정의 순간에도
유영하던 자유의 품 속 잊을 수 없어
눈 감지 못한 허연 눈망울
마른 침 삼키며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목구멍
올려다보고 있다

탁탁 튀는 고온의 열 받은 구리빛 몸뚱이
일열로 열 세운 사열식장
노가다 김씨와 박씨 허기 달래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동행하는 길이라고
쟁반 위 꼬리만 남은 유언들
한 무더기 침묵으로 내가 문상하고 있다



*3 오징어 덕장에서


꼬챙이에 꿰어진 죽음을 본다
햇빛과 달빛 번갈아가며 노질하는 사이
비린 해풍에 야위어가는 몸뚱이
뻥 뚫인 가슴 한 복판은 누구를 향한 노여움인가
한굽이 세찬 물살 놓쳐버린 먹물 구름집
검은 피톨 가둔 무덤, 내 몸에 피어나는 붉은 꽃잎이다
그 무덤 안에서 피워 올리는 환생의 꽃이다
온몸으로 나를 보는 숨쉬지 않는 저 생명들
무거운 바다 온통 짊어지고 떠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을 본다



*4 잉태


유리창을 기는 물방울의 꼬리가 줄을 잇는다
온힘 다하여 밀치고 들어가는 힘센 물방울
물방울과 물방울의 만남은 얇은 가죽의 집에서
맑고 투명한 또 하나의 물방울 만든다
둥글고 온전한 방 속에 안착한 물방울
그때부터 하나의 달 잉태하기 위해
어떠한 틈입도 주지 않는다

각진 생각들 모서리 둥글게 다듬는
경건한 호흡 한 번씩 들이킬 때마다
달은 점점 크고 불룩해진다
단단한 경계 반짝 일어서는
만삭의 달은 오만하기 그지없다
둥글고 단단한 물방울 집 한 채
내 안에 환한 보름달 들어있다



*5 게이트 볼


시내를 가로 지르는 다리 밑 나무벤치에 앉아
소주잔 돌리며 미역 꼬다리를 씹고 있는 노인들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공에 눈길 꽂는다
적색 볼이 제1게이트를 통과하자 파란 바지의 노인
먼저 달아난 백색 공을 슬며시 밀어낸다
밀집모자의 4번 공 떼구르 반대 방향으로 굴러가자
파란바지와 밀집모자 눈빛 강하게 부딪힌다
붉은 공과 흰 공이 적 되어 싸우고 온 힘 다해 문을
고수하는 노인들 편갈은 전쟁이 불을 뿜는다
1,2,3 게이트를 통과한 후 고울폴 명중시킨 또 다른
백색 공의 노인 스틱을 내던지며 횡하니 사라진다
먹이를 쪼고 있던 비둘기 떼 구구거리며 슬금슬금 달아나고
빈 소주잔에 담긴 하늘이 기우뚱거린다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성문의 싸움, 생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순간처럼 노인들 전쟁이 처절하다
다리 위로 지나던 한 아이의 돌맹이 시냇물에 첨벙
물장구가 요란하다




*심상으로  등단
*시낭송가, 시낭송지도자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한국시낭송가협회
  여성문인협회,국제펜클럽회원
*공저  ( 시섬 3집, 싸리울 3집, 들꽃과 구름 4집)

*주소__      대구 수성구 지산동 보성A 10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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