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훌라밍고


글.윤향기


먼 해적들의 땅 스페인으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여자의 눈을 빤히 쳐다보기만 해도 강간으로 여기던 때부터 전해 내려온 훌라밍고, 그 춤 얘긴데요. 그 격정의 빛은 빠꼬 데 루시아의 신명 나는 연주에 맞춰 까메론의 굵은 육성이 쉬고 갈라진 곳에서부터 가슴이 찢어질 듯 퍼 올리는 카테였구요. 삶의 애환을 덕지덕지 묻힌 층층 드레스는 물결처럼 번지는 집시여인의 흐느끼는 물방울 그림자였는데요.  판자위에서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그 눈빛, 얼마나 깊고 서늘한지 춤을 바라보면서 문득 저 춤이 바로 無常의 화신이려니 생각했습지요.  훌라밍고 안에는 이미 훌라밍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춤추는 집시도 없고,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동체대비의 순간만 오롯하였습니다.  무리져 사는 무당집시의 슬픈 무늬처럼 그날의 영감에 따라 영혼의 춤을 그리는 그들을 보며

만약 누군가가 다가와 나에게 무희가 되라고 속삭인다면,
나는 솔로로 추는 훌라밍고의 그 고독한 오르가즘 보다는 남녀가 마치 섹스를 하듯, 합환의 자세로 일관되는 파도형 오르가즘인 탱고를 선택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려다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