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것 같은 하늘에
풀어진 연줄로 걸린 가을이
잊고 산 세월의 속주머니를 뒤집는다
게르만족을 연상케 하는 앞집 남자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소주나 한잔하자는 말에
양주밖에 못먹는다던 그 남자
테니스를 치다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데
골프채를 들이대며 흔들어
나와는 어울릴 수 없는 자라는 생각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그 남자는 이사를 갔고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오산역에서 전철을 내려
하늘을 보는 순간 가슴을 치며 다가오는
그의 얼굴이 하늘 속에 있다
대추나무 가지 끝에서 익어가는
가을의 향기가 코끝에 스치고
푸른 하늘에 구름으로 쓰여진 이야기가
가슴을 아리게 파고든다
내 안의 작은 생각의 부스러기가
조각맞추기로 하늘에 새겨진다
사람은 서로 다 다르단다
그는 자기를 말한 것 일뿐
나와 안 맞는다고 미워하지 말아라
가을은 잊고 사는 일들을 떠오르게 하는 마법사
가장 빛나는 것들은 눈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빈마음으로 넌지시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