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량산
                    
                                        정선영
산을 오르면
반드시 내려온다
오르는 산의 첫발은 태어남이요
다시 내려오는 산 밑은 죽음일 것이다
봉화 청량산에서
청량사 왼쪽으로 오르는 육백의 철계단
오르다 지쳐 망설이다
기어서 오른다
엎드려 긴다는 것이
굴욕이 아닌 편안함을 알고
혼돈 속에 오른 산
자란봉 정상에서
12봉우리 연꽃잎에
노송과 어우러진 촌락
그리로 가는 너를 보며
하강이 아름답고 행복한 길로 보였다.  


2. 가을 들판

물드는 것은 석양만이 아니다
아침해가 떠오를 때도
하늘은 단풍처럼 물들어 있다

초록의 시간에 잎은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사고가 있었을 뿐
잎이 질 땐 처음 색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모두 소모해야만
낙옆처럼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
죽음 앞에 의미 없는 소유처럼

생을 다한 여유로움과
허전함이 함께 하는 가을 들판에
사랑을 다하려 남은 시간을 붙잡는다.


3. 지금 내 나이는

사랑이
한참을 놀다와도
흔적이 남지 않는 나이

꿈과 살던
삼십대의 늘 그리기만 하던
나의 시간

손 사이로 빠지는 물처럼
불혹의 그 나이
내겐 오지 않을 듯 싶더니

눈앞 허공에서
떠다니는 나의 분신들
붙잡아 내 가슴에 숨겨두련다.


4. 낙서

새 공책의 첫 장을 남겨두는 마음같이
맨 뒷장엔 늘 낙서를 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통제 없이 한 낙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난 그 망가진 그림을 수정해 멋지게 완성할 수도 있다 여겼다
그러나 흩어진 구름처럼
그림은 더 좋아지지 않았다
동지가 수없이 지난 다음
고치는 것보다
처음부터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아직도 공책의 끝 장엔
망가진 그림 같은 낙서를 하고
완성을 꿈꾼다.



5. 시월의 사과나무

멀리 있어도 가지고 싶은
나의 신부여

가진 멋 다 부리는
붉은 색 열매여

가까이 오라고
나를 부르네

난 이브 보다 빠르게
더한 그가 되어

비록 멀리 있어도
그대 가까이 나는 있느니.


6. 푸른 안개

어제 본 네가 아니었어도
길을 잃진 않지만

그때를 기억하는 내게
너는 푸른 안개

하늘의 언어인 양
고운 새순들

평화를 찾아
분주한 하루

어제인가 떨어질
내 마음 여린 순

나는 오늘
강렬한 태양을 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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