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

경복궁을 짓밟은 김문 세도에
상갓집 개처럼 흔들리던 술타령이
운현궁의 거친 술잔을 벼려
썩어가던 주춧돌을 파내고 개혁의 대들보를 세웠다
신정왕후의 치맛자락으로 저항 하는 양반의 회초리를 꺾어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고
태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남대문을 3층으로 높였다
흔들리던 골골마다 사창의 탄성도 잠시
당백전과 소나무의 옹이에 발목을 채였다
남은 들에 실려 간 아버지의 혼백에
오페르트의 삽질이 박히고
한미한 며느리의 감춰진 바늘 끝에 심장이 찔린 채
정처 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는 갈대밭 되어
강화도 수로에 쌓인 수군 초 이파리 바람 속을 날다가
해미읍성을 떠도는 천주교인의
금간 세월의 쇳소리에 설치는 밤낮을 보냈다
불순한 저항의 깃발에 눈꺼풀이 덮히고
파도의 가르침을 귓전에 흘리며
동북아 양국의 부러진 우정을 잇던 늙은 몸이
공도리랑 대덕리를 떠돌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솔바람 쓸려가는 이야기에 꿈길을 헤매며
행여나 님 소식에 귀 기울이고 있다
부귀도 영화도 한여름 밤 꿈인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