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에 취한 성종이
후원을 돌다가
정자 기둥에 시를 지었다

푸른 옷감으로 봄 버들을 만드니(錄類剪作三春柳)
붉은 옷감은 이월의 꽃을 만드네(紅錦裁成二月花)

헛기침을 남기고
비원을 떠났다가
마무리가 된 댓구를 보았다

대신들을 시켜 봄빛을 다투게 한다면(若使公侯爭此色)
평민의 집에는 채 봄이 가지도 못하리(韻光不到野人家)

기가 막힌 왕이
문지기를 부르니
내관을 따라온 규원은
놀라움에 사시나무가 되었다

사연을 들은 왕이
작은 벼슬을 내리고
학문에 정진케 하였으니
소리 없이 다가오는 운명의 선물에는
발소리가 없구나

애써 준비한 음식이나
힘써 닦은 학문도
주인을 잘 만나야 맛이 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