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에서

폭신한 이불자락들이 길게 누워
길을 내고 있다
그 길 비인 바람 등에 업고 눈부신 갈꽃이
파도치며 가슴을 풀어 놓는다

주홍빛 꽃잎파리
햇빛에 달구어진 나무 잎새들
지쳐버린 가슴으로 피를 흘린다

허공에 비워버린 이름 석자
낡은 거울속으로 끌어 내 보면
목줄기 찔리는 가시 같은 것들
뼈속까지 허옇게 도려내고 있다

수많은 시간 살라먹고도 모자라
가슴까지 차오른 늦가을 햇살
갈꽃 무리속에 울먹울먹 기어오르고

아득한 하늘 끝으로
날아간 새들의 날개 터는 소리
다시 돌아오는 날
누워버린 갈꽃들은 다시 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