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병마골의 어스름
따스하게 써늘한 가을의 조각들이
깃발처럼 흐느낀다
자판기는 백원짜리 한개로
고개를 숙이라 하고
밭은 침목은 마음을 붙들어
생각의 발목을 나꿔챈다
이파리가 무성한 빛깔나무에서는
열매를 볼 수가 없었고
하늘을 찌르는 키 큰 나무엔
바람의 호통만 가득하다
구석진 절벽에 눈길 거두던
양순하게만 보이는 나무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달았다
화려한 빛깔로 익어가는 가을이지만
겨울로 가는 기차가 오면
가진 것 모두를 버리고 떠나 듯
우리의 삶도 그러할 뿐이다
그래서 가을은 비움을 말하고
비밀스러운 여름밤의 추억을 날려 보내라 하는 가 보다
가을은 겸손한 것들만 사랑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