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여자

장롱 속에 붉은 티셔츠를
다시 꺼내드는 사람들에게
버림 당한 여인 같은 오월의 초이틀 아침
연초록 가로수가 발목을 낚아채는
7시 뉴스를 뒤에 남기고
다잡을 수 없는 마음의 길로 무단횡단을 감행 한다
전철을 놓친 사람과 시간을 못 맞추는 사람들의
자투리 시간이 행복의 샘으로 바뀌는 매점 아저씨의
잘잘 끓는 입언저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천천히 계단을 내린다
한물 간 듯 졸고 있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든 사람들이
눈에 뜨게 줄어든 객실 안에는
화원의 꽃처럼 피어난 몸서리들이
적도의 한낮인 줄 착각하는 모습으로 늘어져 있다
차창 밖은 다투어 소리치는 빛의 시장이다
벙어리가 되어가는 고정된 길 위로
팔짱을 끼고 올라서는 아버지와 딸의 거리를 재다
화면 속의 여인처럼 방싯대는 하늘에 주먹을 들이 댄다
바늘구멍 사이를 통과하는 자동차를 피해 들어선 골목길에는
동네의 아침을 지키는 늘어진 귀를 가진 도사견이
발길질에 익숙한 듯 눈치를 보다가 슬쩍 하늘로 눈길을 돌린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햇살에 벌어진 조개 살 같은 봄밭에
내리막길에서 가속 페달을 밟은 새싹처럼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게 여물어가는 봄바람의 진한 향기 속으로
철없는 여인의 몸짓이 구름으로 떠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