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유채화


시 / 주현중


무질서 속으로 터벅거리며
온몸 던져 걸어가는 발걸음
예민한 코 스치는 물이끼가  
비를 먼저 맞이하는
겹겹 일상의 먼지
비의 애무에 수줍어 몸을 닦고
습기 배인 나무
옷고름 풀어
몸으로 비 맞고
말간 연(軟)갈색 빗물 스민 얼굴
잿빛 눈 서늘하여 길나서니
어느 새
마음 두드리는 빗줄기 문득 멈춘다
정지된 시간의 터널  
빗속을 지나는 자동차
이탈한 의식은 폭풍의 바다를 유영하고
기억 속엔 비만 내린다.
빗줄기 사이로
한줄기 빛처럼 스미는 환영
식어버린 차가운 손끝,
뽀얀 웃음으로 손 내밀고
벌써 온기는 마음 타고 오른다
희망은 콘크리트를 비집고
허무하게 무너지다
어느 새 일어나 푸름이 숨쉬던 시절
동화 같은 계절 있었지
비를 그리며
벽에 기대어 멍하니 바라보던 때
내게 허락된 여정까지
빗속을 걷다보면
가물어진 내 영혼 파릇하니 피우고
빛바랜 수묵색 가슴은
향기로운 진한 빛깔 뿜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