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쑥

긴 밤을 지새운 봄비가
헐벗은 뼈를 적신다
아름답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며
귀치 않는 생명은 또 누구랴
순명으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짓밟힌 허리가 시리다
바람은 불어 가슴팍을 찌르고
손발을 묶인 세월이 허공에 선다
폭풍이 거셀수록 빛나는 등대의 불빛으로
방향키를 놓은 배가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듯
시리게 쓰린 기억의 파편들이
봄의 기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찢어진 포스터처럼 꾸겨진 향기라도
미소를 잃지 않는 네가 있어
절망의 땅에서도 싹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