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ㅅ길

김지하

간다 내 너에게 간다
조선이여 옛 조선이여
그 터에 솟은 오녀산성(五女山城),
흥안령이며 아무르며 새 시절 만나
도리어 영그는 소슬한 역사의 높이여
거기 고구려에 간다
하늘이 좋고 넋이 좋다면
하늘길로 넋길로라도 가고
땅이 틀림없고 바다가 맞춤이면
아무렴 그 길로라도 간다
이제야말로 그렇구나
며칠 전에 만났다 헤어진
베트남 작가동맹 서기장 휴틴과 함께
중국 민초들의 꽃 손가(孫歌)와 장법(張法),
일본의 마리에며 미소구치 교수며
그래 이제는 몽골과도 함께 간다 고구려ㅅ길을.
아,이 길은 길이 아닌 마음이니 간다 아시아의 옛마음.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시대, 오는 시절,
오는 역사의 드높고 날카로운 예감이기에 간다
바이칼의 저 푸르른 환상에서도 보았고
쌔하얀 천상에서 돌이 된 황궁씨(黃穹氏)
그분 그 분의 붉은 맹세, 푸른신화에서도 화안히 보았던
다물(多勿)! 다물(多勿)이여! 영토가 아닌,영토가 아닌
마음이요 몸이며 아시아길래 간다
가서 나 조용히 듣조리라
시베리아 허공에 홀로 외치던 수만년 전 신의소리
율려(律呂)의 새 소리 새 얼굴 만나러 이제야 간다
내 너에게 간다
차라리 몸 아픈 늙음이기에
고구려, 아아 내 마음의 깊고 깊은 흰 그늘이여
고구려ㅅ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