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단풍
                             김소엽

당신이 원하시면
여름날 자랑스러웠던 오만의
푸르른 색깔과,
무성했던 허욕의 이파리들도
이제는 버리게 하소서.

혈육이 가지를 떠나
빈 몸으로 당신 발아래 엎드려
허망의 추억까지도
당신께 드리오리니
당신의 피로 물들여 주소서.

바람이 건듯 불면
당신의 음향으로
내 젖은 영혼이 떨게 하시고
노을이 찾아들면
육신을 더욱 고운 당신 빛으로
황홀한 색채를 띠게 하소서

푸르른 나는 가 버리고
내 안에 당신이 뜨겁게 살아서
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게 하시고
머언 훗날
어느 순결한 신부의 연서로 남아
당신의 사랑으로 물드는
한잔
불타는 단풍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