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 숲길에서

                                                                           고재종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소리소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뱍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무명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 보긴 걸어 봄 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