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솟아 오른다

                                                                                                      이근배

아침이 열린다

긴 역사의 숲을 거슬러 올라

어둠을 가르고 강이 태어난다

이 거친 숨소리를 받으며

뛰는 맥박을 짚으며

소리지르며 달려드는 물살앞에서

설움처럼 감춰온 한강의 이야기를 듣는다

 

강은 처음 어머니였다

살을 나누어 나라를 낳고

피를 갈라서 겨레를 낳고

해와 달과 별과 구름과 바람과 꽃과 새와

나무와 풀과 산과 들과

그리고 말씀과 노래와 곡식과 잠자리와

사랑과 자유와 믿음과.....

강은 거듭나는 삶이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는 날부터

숱한 목숨들을 일구면서

한편으로 죽어가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강은 끝없는 울음을 삼켰다

때로 지치고 쓰러지고

찢기고 피 흘리면서도 강은

다시 일어서서 달리고

더 큰 목숨을 부둥켜 안고 왔다

 

나라는 나라로 갈리고

형제는 형제끼리 다투면서

칼과 창과 화살의 빗발을 서고

남과 북 동과 서에서

틈틈이 밀고 들어오는 이빨과 발톱들..

강은 홀로 지키고 홀로 싸우며

마침내는 이기고야 말았다.

온갖 살아있는 것들에게 젖을 주고

품에 안겨 가꾸면서도

강은 늘 버림만을 받아왔다

먹을것을 주면 썩은 껍질을 보내오고

꽃을 주면 병든 이파리를 던져오는

시달림과 아픔과 쓰라림을 견뎌왔고

끝내는 가시철망에 한 허리가 잘리는

눈 감을 수 없는 슬픔을 만나야 했다

 

그러나 이제 강은 다시 태어났다

생체기를 주고 마구 더럽히던

그 아들과 딸들의 손으로

맑고 환한 피가 뛰는 숨결을 살려냈다

바다로 몰려 나갔던 물고기 떼가 돌아오고

제 고향으로 날아갔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뗏목이 흘러오뎐 그 물이랑에

오늘 한가로운 놀잇배가 두둥실 떳다

 

그렇다 들리느냐

정선 아라리 굽이돌아 가슴에 젖고

한강수 타령 장구춤에 흥겹구나

만선의 돛폭 울리며 징징징 울리는

그날의 뱃노래 다시 부르며

한강은 새색시 같은 어머니가 되어

푸른 치마폭 넘실 감싸준다

 

흘러가라

역사에 얼룩진 땟자국이여

나라의 어지러운 비바람이여

겨레의 앙금진 핏물이여

그리고 오직 사랑의 이름으로만

자유의 이름으로만 평화의 이름으로만

통일을 싣고 오라

깃발 드높이 통일을 싣고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