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걸어가면

 

                                                              유안진

 

혼자서 걸어가면

가을길이 보입니다

여위어 한갓지고 비어있는 외진 길이

편안한 누님같은 과꽃이 피는 길이

아리아리 아픈 손짓 불러줍니다

 

혼자서 걸어가면

가을길이 열립니다

한번쯤 혼자서 울어봐야 하는 가을

울어서 제 가슴의 크기도 제대로 느껴지는

텅빈 가을길이 휘어지며 열립니다

 

너를 사랑하는 바로 그이가

너를 울릴 그 사람이 되나니

이별있는 사랑만이 정녕 사랑 이라는

바람의 목소리를 누님의 목소리를

가을귀는 스스로 알아 듣습니다

 

빛나는 날과 기쁜 때를 지나서

마침내 그대 눈물과 우수에 싸이리라

27세 요절시인 러시아의 레르몬토프가

가을황야에서 이런 노래 불렀듯이

가을길은 어디서나 눈물과 우수의 길입니다

 

혼자서 걸어가면 모든 길이 가을길입니다

아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비교되고 싶지 않아

외롭고 쓸모없어 호사스런 이름으로

인생을 노래하는 눈물의 시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