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찾는다    
                                                        오세영

바람이라 이름한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呼名)해도  다시는  대답하지  않을  것들을  향해
이제  바람이라  불러본다.
바람이여,
내  귀를  멀게했던  그  가녀린  음성,
격정의  회오리로  몰아쳐와  내  가슴을  울게  했던  그
젖은  목소리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산들바람에,  때로는  돌개바람에,  아니
때로는  거친  폭풍에  실려
아득히  지평선을  타고  넘던  너의  적막한  뒷모습   그리고
애잔한  범종(梵鐘)소리,  낙엽소리,  내  귀를  난타하던  피아노 건반
그  광상곡의  긴  여운
어느  먼  변경   척박한  들녘에  뿌리내려
민들레, 쑥부쟁이,  개망초   아니면  씀바퀴  꽃으로  피였는가.
말해다오.
강물이라  이름한다.
이미  잊혀진  것들
그래서  무엇이라  아예  호명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이제  강물이라  불러본다.
강물이여,
한  때  내 눈을  멀게 했던  네  뜨거운  시선,
열망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내  육신을  황홀하게  달구던  그  눈빛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때로는  여울에,  때로는  급루에,  아니  때로는
도도히  밀려가는  홍수에  실려
아득히  수평선을  가물가물  넘어가던  너의
쓸쓸한  이마,  그리고
어디선가  꽃잎이  지는  소리,  파도소리, 철썩이는  잔  물결의  여운.
어느  먼  외방의 썰렁한  갯벌에  떠밀려
물을  향해  언제나  귀를  쫑긋  열고  살아야만  하는가.
해파리, 민조개,  백합  아니
온종일  휘파람으로  울다  지친  소라
말해다오,
구름이라  이름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
무엇이라  호명해도  다시  이룰 수 없는  형상들을  향해 나는
이제  구름이라  불러본다.
구름이여,
한 때 내 맑은  영혼의  하늘에  푸른  그늘을  드리우던
오색 빛  채운(彩雲)
그  빛나던  무지개는  지금  어디  있는가.
때로는  별빛에 실려,  달빛,  아니  어스름한  어느 저녁 답,
스러지는  한  조각  노을에  실려
아득히  먼  허공으로  희부옇게  사라지던  너의   그
두  빈  어깨  그리고
어디선가  내리치는  마른번개,  스산하게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어느  먼  이역의  하늘로  불려가
흩뿌리는  싸락눈,  진눈깨비  아니
동토(凍土)에  떨어져  나뒹구는  우박이  되었는가.
말해다오
너를  찾는다.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강물이라는,  구름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해  저무는  가을  저녁
찰랑대는  강가의  시든  풀밭에  홀로
망연히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