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미술관


                                      황도제



감정 미술관에는
내가 그린 그림이 한 점도 없다.
빈 벽이다.

그것이 당신의 벽이라는 사실
사랑의 그림이 결혼 후에 한번 걸렸던가?
사랑 대신 적당히 당신을 속이기 위해
걸어놓은 달
아직까지 벽에 떠 있다니.

그 달빛으로 번역한 눈물의 삶
더불어 길을 잃지 않았노라고
각인된 혀끝에 묻어나는 혼야의 수절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읽혀졌을까?

내 젊음의 거품은 다 꺼졌는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젊은 시절의 내 얼굴과 이름
암송하고 있다니
숭고함의 떨림이다.

늦었지만 더듬더듬
당신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달빛에 쇠한
늙고 초라한 인상

당신이 허락한다면
당신의 벽에 걸어도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