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의거리

, 그 어느날

 

 

짙은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자잔하고 가는 긴 꽃 대롱에

소망의 꽃잎 피운다

 

내려다 보이는 강언저리

늘 불리우는 소리

천년의 역사가 흔들리듯

푸른 숨결이 아른다

 

봄볕에 녹는 땅에 발자국 찍히고

도란거리는 얼굴들

저마다 비밀을 털어 놓는다

더듬거리며

숨벅이는 사랑을

 

2. 동인지시

가을 사랑

                  

 

타오르던 태양이

지구 저편으로 기울면서

식어 가는 날

 

벼 까라기는 살살이 춤추고

쑥부쟁이 꽃이 가득히 웃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 아기 구름이

하얀 색을 마음껏 칠하고

은행나비 흘흘 날며

단풍잎은 소슬한 바람에

빨간 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거기 쉼터

시냇물이 조잘대고

작은 눈과 귀를 가진 사람들이

옛날을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운 기다림

숨 죽여 키워 온 꿈

사랑의 체온 속에

점점이 안겨옵니다

 

3. 동인지시

강변의 밤

 

-

낭송- 이 성 숙

 

무넘이 너머

밤하늘은 고요에 잠긴다

 

막 돋아나는 젖니를 닮은 새싹들이

어느새 초록으로 물들어

숨을 죽여 실눈 뜨고

무수한 인연들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인다

 

첨벙 흔들리는 물 속에 손을 담근다

꼬리치며 내 사랑이 헤엄쳐간다

 

그리움에 가득찬

밀려드는 사연을 안고

타오르는 열정으로 찾아온 길

 

쏟아져 내리는 별빛이 등에 박힐 때

지난 세월을 하나씩 반추하며

깨달음 일깨운다

4. 동인지시

영원한 내 연인아

 

- 김 영 숙

낭송 이 성 숙

 

작은 집도 아닌

넓은 집도 아닌

그 안에 누군가가 웅크리고 있다

삼월의 문턱을 넘어선

다사로운 빛이 환히 들여다 보는 방

 

기둥을 세우고 매듭을 굴리면서

버티고 살아온 생의 한 자락이 보인다

 

가스라진 짧은 머리

포물선 그리는 어깨

점점 속 빈 허수아비가 되어

물구나무 선 개미가 되어

볕살의 무게를 단다

 

나는 멍청이여, 난 뭘 몰러

염치없이 점령하고 만 병

착한 그믐달이 되어 간다

 

노을이 저리 붉게 타고

바람이 큰 소리로 열꽃을 틔우는데

해종일 꿈을 박음질하는

내 마음의 연인들에게

따스한 손길 기다리는

어린 정겨운 연인들에게

우리 모두

눈이 되고 귀가 되어

하루하루의 웃음을 심고

잉걸불이 되어야겠다



      * 진각치매 단기보호소에서 봉사하며 쓴시.(열다섯분의 치매 할머니가 생활고 계십니다.)

5. 후백과의 추억

시와 사랑 그리고 샛별

 

후백 선생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시심 詩心이라고 하셨지요

고루후섬의 포도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포도로

길러 낸 사람도 시인이고, 그 마음도 시심이라고.

지중해 파도 소리를 구름에 담아 어린 가슴들에게

고루후섬의 포도송이 같이 잘 익어가게 하였으리라 하시기에

삼십여년을 작은 포도알 알알이 모여 잘 영글어 가는

포도송이를 이루기에 온 정성을 다 하였고 앞으로도

아름다운 시로 익어 가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잔잔한 웃음 속에

인자함이

안경 너머 흐릅니다

변함없는

사랑의 그림자

등에 업고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노래 부르며

 

높은 하늘에 빛나는

샛별이 가르쳐 주는

시의 길을 따라갑니다.

 


6. 나는 누구인가

 

 

나는 솔잎

              

 

큰 산 작은 산에

작고 큰 소나무

거기 솔잎은 푸르게 푸르게

혼자 일 수 없는 사랑

꼭 붙잡고

하늘 향해 태양을 마신다

뜨겁게

가슴 태우는 시심

거기 내 영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