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의 거리

나비야
팬지 꽃잎에 살포시 날아들어
너도 꽃이 되어버린 사월의 잔등에
햇살 다발로 묶어 십자수를 놓아 주마
수틀 한 자락에 올라앉은
햇살무늬. 빗살무늬,  사랑무늬

나비야
세상 건너는 길 위태로워 조심스럽지 않더냐
스산한 바람에 우우 몸 터는
그런 날도 있으렸다
꽃 속에 세상 넣고 마음 비워갈 때
훨씬 가벼워진 날개
나비야 너훌너훌 춤도 추어보렴


*2 흙담 아래(2월 문학회 원고)

아직도 거기 있을거야
머슴애와 가시내 소꿉놀이 하던
무너진 흙담 아래
냉이랑 씀바귀랑 김치 담던 벽돌 고추가루
그냥 거기 있을거야

여긴 안방 저긴 대청
장작개비 문턱이 닳도록 오가던 인정도
흙묻은 가마니에 쌓인 채
아기자기 하던 살림살이

사금파리 병두껑 세간 마련튼
알뜰한 순아는
한사코 엄마노릇만 하던 새침한 각시

수수깡 주워와 벼락 아비된 돌이는
안방에서 에헴 큰 소리
고 달팡진 순아 고분고분 말 안 들어
호령하다 보면 절로 웃음이

입안에서 뱅뱅 돌다 끝내 못해본
"여보" 란 말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리 쉬운데

머슴애와 가시내 소꿉놀이 하던
무너진 흙담 아래
냉이랑 씀바귀랑 김치 담던 벽돌 고추가루
아직도 거기 있을거야

*3진달래 산천(3월 문학회 원고) 낭송 박상경

침묵이 깊게 내린 산등성이
누웠던 자리 털고 일어서도
다시눕는 풀잔디에
간질간질 속삭이는 풀잎들의 이야기

하늘 한 자락 깔고 누은 등짝 밑으로
구름 내려와 돛단배 한 척 띄우고
두둥실 먼 섬으로 떠간다

풀잎들이 서걱대는 여기
꽃반지 끼워주며 손가락 걸던 어릴 적 친구
살포시 꽃대궁처럼 목 올리고

가슴 깊이 묻어둔 불씨
진달래꽃 피워 산 가득 메우면
내 목은 노천명의 노루가 되어
산 허리를 뛰어 다닌다

연두빛 스카프 솔가지에 걸어두고
수천 마리 학 접어
하늘가에 뿌리다 보면
녹슨 곡괭이 날 같은 가슴에도
진달래꽃은 다시 피어나겠지

*4 동행자 (불우이웃돕기)

어디선가 고단한 신음소리
땅거미 짙어질수록 깊어가는 한숨소리
저탄장 더미 위 환한 달빛마저
쪼그라든 빈 창자에 채워 넣던
빗물에 젖은 눈물,  땀방울이
비틀린 문고리에 달라붙고

무거운 짐 잔뜩 메고 있는 저 사람들
그 봇짐 내려 놓으면
모두가 함께 가야 하는 먼 길
하나씩 하나씩 나누다 보면
홀가분한 빈 몸

비워지면 채우고 채워지면
비워야 하는 우리네 삶
만남과 헤어짐 부산떨고 지나다보면
돌아온 길 한참 뒤돌아보게 되는 것
너와 나 손잡고 같이 가면 안 되겠니



*5후백과의 추억(1월 문학회원고)

후백 황금찬 그는 백양나무이시다
오래동안 그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백양나무 수틀에 십자수를 놓는 새가 된다
그의 봄은 연두빛 꿈을 심어주고
그가 여름일 때 서늘한 그림자 안긴다
가을이면 별무리 고요히 잠들게 하고
겨울엔 하얀 눈의 순결을 읽게한다

행복
                황금찬
 
밤이 깊도록
벗하는 책이 있고
한 잔의 차를 마실 수 있으면 됐지
그 외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친구여 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연인은 있어야겠네

마음이 꽃으로 피는
맑은 물소리
승부에 집착하지 말게나
삼욕이 지나치면
벗을 울린다네

*6 나는 (  새  )다

나는 백양나무 거북등을 열고
내 꿈을 밀어넣는 한 마리 새다
백양나무 껍질은 견고하지만
끊임없이 쪼다보면
껍질은 열리고 꿈은 자라서
푸르름의 만가를 부르게 될 
한 마리 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