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대리 황태덕장

  

 

겨울 벌판

눈바람과 몸 썩어

투명한 육신으로 박제가 된다

 

해 지는 저녁

어두움 보다 먼저 찾아온

아득함

산이 되었다가

나목이 되었다가

장막이 되는 시린 삶

 

먼 바다의 그리움 접고

바람의 골짜기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절개처럼 무릎세우는 신념

 

황태덕장 위에

다시 눈이 내린다.

 

 

 

 

싸리 꽃

  

 

8월 저녁이면

어머니는 등잔불 밑에서

횃댓보, 인두판으로

살아 오르던 그림들

 

어머니는 밤새 꿈꾸던

허상을 쓸어버리듯

싸리비 하나 들고

집 앞 큰 마당까지

가난을 쓸어 내셨다

 

철없는 자식들

가는 회초리

어린 종아리에 묻어나는

어머니의 눈물

유난히 흰 달빛이 시렸다

 

싸리 꽃물 오를 때

한해 풍년을 꿈꾸는

농기구들이 마당 한쪽을 차지하고

눈이 커다란 황소는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한다.

 

헐벗은 시간을 견디고

제 몸 풀어 토해내는 뜨거운 해산

그리움의 꽃 차오르는 날

 

저녁노을 작은 어깨 위에

고운 꿈꾸는

어머님의 꽃수레 곱기만 하다.

 

 

 

 

쇠비름은

 

  

척박한 땅

 

질긴 한으로 피워 올린

 

노란 쇠비름 꽃

 

줄기마다

 

붉은 피 쏟아내던 여름

 

잠들지 못하는 하얀 뿌리

 

수 만 갈래 생의 더듬이

 

꽃자리 마련해 놓고

 

까만 가슴 토해내는

 

질긴 목숨 쇠비름

 

쑥스런 고백처럼

 

담 모퉁이 분홍빛 핏줄 돋우고 서있다

 

 

  

어머니와 마중물

  

 

더위에 지친 몸 일으켜

이슬 걷히기 전

남폿불 켜들고

새벽을 맞은 어머니

 

마당 한쪽 우물가

당신의 삶의 굴레

늘 담겨 있던

어머님의 마중물

 

몇 바가지 펌프에 부어

깊은 암반 속 끌어올린

정화수 한 사발

 

또 아침이 오면 그렇게……

 

옛이야기 되어버린 시간들

이제 골다공증으로

갖은 병 담고 사시는

내려앉은 육신

자식들 탓인 것 같아

내 마음의 마디도

이 밤 무겁게 무너져 내린다.

 

 

 

  

삼릉에서의 오후

  

 

외진 숲 속

꿩들이 짝을 부르는 가을 오후

여인들의 생 같은

국수나무 붉은 줄기

축축 늘어진 길 따라

혈관처럼 굽이쳐 도랑물 흐르고

오백 년 드넓은 능역 안은

그때 그 애비 호령소리

비감하다

 

가녀린 분의 홍살문

정자각 뒤로

커다란 봉분

외로이 지낸 흔적 섧다

 

적요의 능선 아래

역사 속 목숨들

꽃 수놓듯 살아낸

자매 왕후

가을걷이 하루가 바쁜 다람쥐

겨울잠 자러 올라오는 개구리

잎 열매 떨구는 때죽나무, 매자나무

지는 해

노란 낙엽 같은

삶의 무상함이여

 

 

  

약력

 

이름 : 정순임

 

월간 순수 문학시 등단

한국시낭송가협회, 시마을 문학회, 경의선 문학회 회원

현 경의선 문학회 시 낭송분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