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전재순

 

은빛 실로 허공에 집을 지었다

초인종은 없고

대문은 열어 놓고

누군가 오길 기다린다

밤에 등불도 켜지 않은 채

 

언젠가 내 머리

그 집에 부딪혔을 때

나도 놀랐지만

집주인은 더욱 놀라

망가진 집수리하는데

한나절은 걸리고

 

비가 온 후

그 집은 물방울 맺혀

햇살에 구슬로 치장한다

 

 

묵언

             전재순

 

자옥산

대흥사 법당에는

큰 부처님이 계시는데

늘 묵언 수행하라고

법문을 하신다

 

사람들은 어렵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나

 

공양간

공양주 보살님은

지극정성 묵언 수행을 하더니

말문이 닫혀

두 손과 얼굴로 말을 한다

 

공양간을 거쳐 간 선남선녀들

가슴에 묵언을 새기며

높은 돌계단을 내려선다

 

 

봄마중

              전재순

 

강물 속 숭어가

봄기운을 어쩌지 못해

허연 배를 드러내며

솟구쳐 올랐다가 사라지자

 

강 언덕의 버들강아지

화들짝 놀라 잠을 깨고

 

물결따라 헤엄치며

먹이 잡던 청둥오리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가로 사라지고

 

선잠 자던 목련꽃 봉오리

아이들 제잘거리는 소리에

실눈 뜨고 내다본다

 

 

법정 다비

                 전재순

 

꽃샘추위는 기승을 부리는데

펄럭이는 만장 하나 없이

대나무 평상 위에 누워

얇은 가사만 덮은 뼈만 남은 몸

남은 자들의 슬픈 마음을  만장 삼아 

살아 있는 자들의 눈물을 꽃송아 삼아

조용히 가신님

 

붉은 화염 속에 흰 연기로 흩어져서

그리던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에는 가 보셨나요

맑은 가난을 쏟아놓고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시고

훌훌 떠나신님

 

한방울의 아침 이슬로 오시렵니까

한줄기의 시원한 바람으로 오시렵니까

한밤중, 소나기로 우리를 깨우시렵니까

 

임이 좋아하시던

한 송이 모란으로

또 오십시오

 

 

불면

             전재순

 

한숨 푹 잘 수 있다면

내 영혼을 팔아도 좋겠소

 

햇빛으로 육신을 말리다가

용광로에 넣어 제련시키다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겨루어 보자고도 햇소

 

허공에 발을 차고 낑낑거리며

용을 쓰고 넘어뜨려도

내가 중심을 잡기도 전에

금세  일어나 장승처럼

나를 마주하다니

 

제발, 내가 졌으니

허수아비 같은 육신

잠 좀 자게

가만히 내버려 두시구려

 

 

 草江   전재순

서울시 양천구 목5동 목동아파트 512동 406호

jjs3239@hanmail.net

016-619-3239

 

양력

계간  <문예운동> 등단

시낭송가,  시낭송지도자

한국 시낭송가협회, 백양문학 회원

청하문학, 서울시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