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의 거리 원고

     유리창은 말이 없고

                                                전재순

   박새가 유리창을 쪼고 있다

   유리창은 무심히 보기만 할 뿐

 

   산수유 꽃피던 이른 봄날

   수컷 박새가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후 

 

   혼자  남겨진  박새는

   하루에 아홉 번 그 자리에 와서

   부리로 콕콕 유리를 쪼아댄다

 

   여름 지나 가을이 와도

   박새는 유리창만 쪼아대고

   유리창은 아무 말이 없고 

 

     2, 교도소 안의 풍경

 

   날마다 비추는 해와 달도

   여기서는 보기 힘들어요

 

   날마다 헤매던 발걸음 

   여기서는 한 발자국도 못 걸어요

 

   답답하던 마음

   속까지 다 내어주고 나서

   편안해진 몸

 

   푸른 물결 가르던

    힘찬 몸짓은

   다 잊어버렸지요

 

   부모에게 속 석이고

   자식에게 미안하고

   아내에게 할 말이 없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가슴 할퀴는 일 안 할 거예요

   작은 사랑 꿈으로 묶어두고

   마음공부 하며 왔을 뿐

 

   겨울 지나면

   따뜻한 봄은 

   분명 오고야  말겠지요 

 

     3, 놀이터와 까치

 

   아이들이 오길

   기다리는 놀이터

   오늘 따라 아이들이

   한 명도 오지 않는다

 

   놀이터는 고개를 들고

   아파트 쪽을 보다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미끄럼틀

   그네와 시소는 쉴 사이 없이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던

   언제나 시끌벅적 하던

  

   놀이터는 기다리다 지쳐

   기지개를 켠다

 

   까치 두 마리 날아와

   모래를 헤집는다

   열댓 마리 날아왔다

 

   아이들 놀이터

   까치 놀이터가 되었네

 

     4, 제는 끝나고

 

   우리들은 슬펐으나

   아무도 울지 않았다

 

   낯선 바람은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그녀는

   아침 안개처럼 떠나갔다

 

   살아 핏줄이 없어 외롭던 사람

   알뜰히 살아야 한다더니

   너는 강물을 건너고 있구나

 

   라스베이가스에서

   별이 내려 앉던 밤

   시간을 접고 빠져들 때

   개선장군처럼 털고 일어서던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는

   지금도 네가

   나선 곳에 있는 줄 아는데

 

   제는 끝나고

   마지막 흔적을 태울 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너는 웃고 있었다 

 

     5, 황금찬 선생님은 큰 나무입니다

 

   큰 나무는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를 품어 안는다

 

   우러러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가지들

 

   새는 큰 나무에 앉으면

   소리 맑아지고

   거친 바람은 순해진다

 

   당신의 뜰에는

   꽃이 피어나고

   석류가 익어가고

   별은 반짝인다

 

   힘든 삶

   부려 놓고 싶기도 했으련만

   곧은 길만 걸으셨네

 

   팔짱을 끼고 지하철역으로

   걸어 갈 때면

   아버지의 다른 모습

 

   오랫동안 그 모습

   푸르게 기억되리라 

 

     6, 안녕하세요 전재순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산골 작은 연못이다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낮에는 산비둘기 물 먹으러 오고

    해질무렵이면 산 그림자 내려와 제 연못에 기대어 쉴 수 있고

    밤이면 내 작은 연못에

    달과 별이 얼굴을 비추고 바람도 쉬어갈 수 있는

    그렇게 제 작은 연못에서 자연의 모든 생명이 목축이고

    돌아갈 수 있는 평화롭고 온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저는 산골 작은 연못이다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