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흔적

                               손미헌

비가 내리자

저마다의 우산이 펼쳐지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엇갈린 시선의

조급함이 피어오르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길을 가면서

우산 쓴 사람들의 흔적은

버스 안, 바닥에서

그 혼돈의 역사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종점이 다가오고

빗물은 이제

그 흔적조차 남겨 놓지 않으려 하는데

 

하늘 아래 사람들은

그토록 별을 그리워하면서도

스스로의 길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함께해요

                                       손미헌

원을 그린다

쉬지 않고

 

바람은

혼자가 아니라고

나뭇잎을 흔드는데

 

움켜진 주먹

다부진 시선의

너는

돌아 볼 줄 모르고

 

뚝비에

몸서리치던 능소화

덩굴 내려 잡고

저를 보라하네

 

                    

시선은 가벼워지고

                             손미헌

구름바다

성큼 건너 도달한

상하이, 푸동 공항

 

낯설음을 채 깨닫기도 전, 공항은

너의 얼굴을 보여주었지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눈 안의 흔들림은

여름장마 끝의 햇살이 되고

 

낯설면서도, 낯설지만은 않은

갈증의 도시,

미완의 거리에서

 

울고 있는 햇살 바라보듯

점점이 무거워지는 발걸음

가벼워지는 시선 속

커져만 가는 나의 목마름이여

  

     

애벌레, 날개를 펼치다

                             손미헌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잎을 지나

청미래 덩굴을 오르고 있는

분홍빛 애벌레

 

오르고

또, 오르는 것만이 제 할일이라 듯

스쳐가는 그 무엇에도

시선 주지 않는다.

 

침묵 속으로

바람결은 젖어들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미지의 공간

시간 안에서

찾아가는 깨달음에

그어놓을 선은 없었다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두껍고도 단단한

강보에 쌓였던 애벌레는

허락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기다림을

               (이희정의‘나비’를 읽고)

 

은행나무

                             손미헌

비가 내립니다

은행잎 비가

 

오후의 내리던 눈처럼

은행잎 비가 내립니다

 

노랗게 쌓여가는 은행잎이

흘러가지는 않겠지요

 

나무는

제 몸이 비워지는 줄도 모르고

나뭇잎에 날개를

끝없이 달아주고 있네요

 

은행잎 비가 내립니다

 

더 이상 내어 줄 것이 없어지면

무엇으로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요

 

제 몸이 비어지는 줄도 모르고

나무는,

나무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네요

 

 

- 목원 손미헌

- 본명 손순옥    서울 출생

- 문학시대 ( 통권 81호) 신인상으로 등단

- 시낭송가

- 공저 [들꽃과 바람], [한.일 합동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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