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이광민

 

아기 손같이 뽀오얀 자작나무에

하얗게 꽃이 피었다.

 

소복소복 조용히

달빛이 보듬은 설화

 

어둠을 몰아내는 빛에

손끝을 스치고

머릿결을 헝클고 지나는

 

힘을 빼고

두 손을 벌리면

지나온 시간으로 돌아갈 것같은

 

볼을 에고

가슴을 서늘하게 스치며

흩어지는 그리움

 

 

 

                                     

 

                                       이광민

 

가슴에 타오르는 불

한 잔으로 적실까

머리에 오른 열

한 병으로 식힐까

마음에 들어앉은 일

잔이 닳도록 붓고 또 채우니

 

태풍이 휩쓸고 간 듯

귓전에서 끊이지 않는 이명이 잠자고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나오려는

흰소리 한 마디 삼켜

 

 

떨어지는 유성 하나 병목에 걸터앉혀

주거니 받거니

 

휴~

막혔던 숨이

술술

길을 연다.

 

 

 

 

             기억의 혼돈 속에 갇히다

 

                                                     이광민

 

 

바람 앞의 촛불처럼

봉안당을 나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뗏목 같아

나란히 발걸음을 옮겼다.

 

별일 없던 일상은

잠시 태풍의 눈이었음을

혼절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서야 깨달았다.

 

기억 속에 병원이 호텔이고

간호사는 경찰관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일상

 

동생도 제부도 남이 되었고

아들도 손자도 누구로 변했는데

가끔

어머니의 며느리로 남아있는 아이러니

 

 

 

                착각

                                  

                                         심선  

 

산다래 잎이 군데군데 꽃잎처럼 하얗다.

 

청아한 꽃은 땅을 바라보며 피어있고

수분을 도와줄 나비를 기다리는데

긴 세월 아무도 바라보지 않자

하늘 바라볼 꿈을 버리고

나뭇잎을 동색으로 만들었다.

 

섬나라에 남자가 아기를 가졌다고

열리는 포털마다 깜빡거린다.

부인이 아기를 가질 수 없어

남편이 대신 시험관 아이를 가졌단다.

 

서로 사랑하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고

남편은 수년 전 성전환했지만

자궁은 그대로 있어

정자은행에서 산 걸로

아기를 가지는 행운을 가졌단다.

 

산다래 꽃이 수분하면

나뭇잎은 다시 초록으로 변한다.

이제 아빠가 젖을 먹인다고

포털마다 특종을 잡았다 할까

 

 

 

 

                태산 

                                   

                                                        이광민

 

  

아버님 봉안당에 모시고

슬픔을 삭이려

모두가 불낙지를 먹으며

온몸으로 울었다.

 

 

가족이니까 모두 모여야 한다고

명절이나 제사도 빠지지 말고

어머님을 위해 유산을 간편하게 정리하겠으니

상속 포기 각서를 쓰라 했다.

 

 

안부전화 드릴 때마다 힘없는 목소리로 건성인 어머니

걱정되어 먼 길 한숨에 달려가 보니

집문서도 통장도 모두 갖고 오지 않는

소리도 소식도 없는  아들과 며느리

 

 

갈 곳은 한 곳이라 되뇌는 쓸쓸한 어머니

남편과 살아온 이야긴

그리 하고 또 하시더니

아들 패륜은 삼키고 삭이신다.

 

 

생신에도 연락이 없고

추석에는 친정 간다고 오지 않고

설날에는 외국여행을 가서 한국에 없는 그들 

발길을 돌리고 마음을 접는 일은 쉽다

 

 

혈육이어서 더 용서가 어려운

분기탱천한 사람을 보며

용서를 구하러 오길

문 열고 기다리는 일이 내가 넘어야 할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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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호 : 심선

문예운동  시부문 등단

백양문학,  청하문학,  서울시단,  원주문학, 토지문학 회원

한국시낭송가협회 원주지회장

강원전통문화예술협회 문학분과장

원주시립도서관 시낭송교실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