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 원고 - 백양 문학회
글 수 1,490
공손한 밥
고인숙
어디에서 왔을까?
머리 둘 곳 없는 삶이 먹구름처럼 밀려와
둘레둘레 벽을 쌓는 마로니에 공원 앞
뜯겨진 호주머니만 붙들고 있는 유랑자들이 있다
태양이 한 고개를 넘을 때 쯤
반짝 왔다가는
마법을 거는 손길들이 급식소를 차려놓고
오장을 부풀리는 공손한 밥을 주고 있다
한 그릇의 따뜻함이 눈물 그렁그렁하다
사랑으로 채워지고 비워지는 거리
가로수가 일제히 기립 박수를 친다
한겨울의 햇살로 등피를 데워준 충만한 밥이다
한기를 벗어 던진 채
하루를 세워주고 사라지는 밥그릇들
얼마나 지났을까
스멀스멀 사라진 마른 눈물 쏟아낸 보도블록엔
어둠이 뭉텅뭉텅 묻은 밥풀들이 훈기를 붙들고
싸늘해진 담벼락엔 따뜻한 행인들로 채워지고 있는데
한 끼 가볍게 비워낸 내장들, 다 어디로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