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


                                                                     이 근 배 (낭송 이선구)


새들은 저희들끼리 하늘에 길을 만들고

물고기는 너른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데

사람들은 길을 두고 길 아닌 길을 가기도 하고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

산도 길이고 물도 길인데

산과 산 물과 물이 서로 돌아누워

내 나라의 금강산을 가는데

반세기 넘게 기다리던 사람들

이제 봄, 여름, 가을, 겨울

앞 다투어 길을 나서는 구나

참 이름도 개골산, 봉래산, 풍악산

철따라 다른 우리 금강산

보라, 저 비로봉이 거느린 일만 이천 멧부리

우주만물의 형상이 여기서 빚고

여기서 태어 났구나

깎아지른 바위는 살아서 뛰며 놀고

흐르는 물은 은구슬 옥구슬이구나

소나무, 잣나무는 왜 이리 늦었느냐 반기고

구룡폭포 천둥소리 닫힌 세월을 깨운다

그렇구나

금강산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길은 하나

한 핏줄 칭칭 동여매는 이 길 두고

우리는 너무도 먼 길을 돌아 왔구나

분단도 가고 철조망도 가고

형과 아우 겨누던 총부리도 가고

이제 손에 손에 삽과 괭이 들고

평화의 씨앗, 자유의 씨앗 뿌리고 가꾸며

오순도순 잘 사는 길을 찾아 왔구나

한 식구 한솥밥 끓이며 살자는데

우리가 사는 길 여기 있는데

어디서 왔느냐고 어디로 가느냐고

이제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