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두에 바친다


                                                                 이근배(박현 낭송)

1

외치노라

하늘이란 하늘이 모두 모여들고

햇빛이 죽을 힘을 다해 밝은 거울로 비쳐주는

이 대백두의 묏부리에 올라

비로소 배달겨레의 모습을 보게 되었노라

내 청맹과니로 살아왔거니

나를 낳은 내 나라의 산자락 하나

물줄기 하나 읽을 줄 몰랐더니

백두의 큰 품 안에 들고서야

목청을 열어 울게 되었노라

보라

바람과 구름을 멀리 보내고

눈과 비 뿌린 흔적 하나 없이

홀로 우뚝 솟고 홀로 넉넉하며 홀로 빛을 모으는

백두의 얼굴, 백두의 가슴, 백두의 팔과 다리를

이 겨레를 낳고 기른 살과 뼈 마디마디

나를 불태워 한줌 흙으로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어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낳은

태胎에 돌아와서

자랑스러운 내 나라 만년 역사의 숨소리를 듣는다

맨 처음 땅을 덮는 불이었다가

물을 빚어 나무와 풀과 날것들에게

목숨을 준 창조의 신 백두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산을 짓고 강을 깎아

한 나라 한 겨레의 영원한 보금자리를 닦았거니

환웅님 세우신 신시

단군님 일으키신 조선의 크고 밝음이

오늘토록 줄기차게 뻗어 내리고 있지 않느냐

거룩하고 거룩하다

천문봉에 올라 엎드려 절하고

우러르는 천지의 모습

하늘도 눈을 뜨지 못하는

저 깊고 푸른 빛의 소용돌이

바로 이것이다

이 겨레 으뜸으로만 살아야 하는 까닭

누만대가 흘러도 나날이 새로운 빛으로만

목숨을 얻을 수 있는 까닭

오 오 불의 불, 물의 물, 빛의 빛, 힘의 힘

시간도 여기서 태어난다

그렇다 천지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나도 다만 한 순간의 불티일 뿐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왔고

나라는 어디 있고 겨레는 누구인가를

아득히 꿈속처럼 뵈올 뿐

대백두 그 한없이 높고 한없이 깊은 말씀

어찌 다 이를 수 있으랴


2

내 나라는 반도가 아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옛 조선의 지도를 다시 찿아야 한다

저 굽이굽이 펄펄 끊는

고구려의 말발굽 소리를 들어라

백두의 불과 물이 이르는 땅은

모두 내 나라요 내 겨레의 터전이다

겨레여

이 백두에 올라 보라

처음부터 물려 받았고

마침내 다시 찾고야 말

끝 모를 땅이 저기 부르고 있다

하물며 반세기 역사, 반세기의 지도를 두고

가슴 조이고 아파할 일이 무엇인가

이 백두에 와서 보라

한 핏줄 나눈 형제끼리 싸우는 일이며

기쁨이며 슬픔, 사랑이며 미움, 분노이며 용서 따위가

얼마나 부질없고 부끄러운 일인가를

1989년 8월 15일

나는 작디 작은 물고기가 되어

장백폭포를 거슬러 올라

천지의 물가에 닿는다

손을 담근다

천지가 내 안에 기어들고

내가 천지에 녹는다

엎드려 물을 마신다

내 썩은 창자의 창자 속에서 솟구치는

견딜 수 없는 힘이 나를 물속에 빠뜨린다

나는 일파만파로 천지의 물살을 가른다

어머니의 태 안이듯 꿈의 꿈, 사랑의 사랑 속에 노닌다

이대로 오르고 싶다

하느님의 밧줄을 잡고

불과 물이 뒤섞이는 바닥까지 내려가고 싶다

겨레여, 7천만이여

아니 7천만의 아들의 아들, 딸의 딸들이여

철철 넘치는 이 하늘샘에 오라

태평양에도 대서양에도 뿌리를 내리는

백두산 천지에 와서

영원히 사는 겨레, 영원히 하나인

겨레의 어머니 품에 안겨보라


3

일어서라

백두대간은 다시 불기둥을 세워

지구촌의 가장 드높은 봉우리임을 선언하라

압록이며 두만이며 송화며

한라며 지리며 금강이며 묘향이며

부챗살처럼 퍼진 긴 백두의 산맥을 일으켜

북을 울리라

우리에게 설움이 있었더냐

짓밟힘이 있었더냐 쓰라림이 있었더냐

아니다

더 큰 역사, 더 큰 나라 되기 위한

스스로의 담금질이었을 뿐

우리에게 종속이 있을 수 없고

분단이 있을 수 없고

더더욱 상잔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오늘 이 겨레 매인 사슬

더러는 쓰러지고 더러는 찢긴 피흘림의 자국

아 크나큰 밝음 앞에서도

눈감고 길을 잃는 어리석음이 있나니

아직 다 못 가진 내 강토가 있나니

백두대간이여

다시 한번 불을 뿜어다오

천둥소리를 들려다오

통일의 새벽을 열어다오

아 아 백두산 천지

나는 부르지 못한다

온 겨레가 목놓아 부르는 합창이 아니고는

나는 노래할 수가 없다

허나 내 다시 오리라

통일이 오는 날 다시 와서

참았던 불덩이 같은 울음 터뜨리리라

겨레 함께 껴안고

더덩실 춤추며 날아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