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뜬 그리움

                                            황성호

 

긴 굽이돌아 찾아온 형형炯炯한 그리움

산청 논두렁에 피었던 열일곱의 추회秋懷

노오란 모시저고리의 어머님 얼굴

구름꽃 사이 새로이 돋는다

 

남강 고운 물결 위 불던

그 파란 바람 불어야 할 때를 알고

솔가지 꺾어 아버님 넘으셨던

머언 재 넘어 함안 앞산자락

모두들 떠나가신 이 산야에

철들은 누이 오빠야! 부르던 목소리 쟁쟁하건만

 

산다는 것이 그리움 한줄 쌓아가는 일이라 해도

안개꽃같이 떠오르는 그리움이야

어찌 한가슴으로 다 껴안을 수 있단 말인가

 

별빛 같은 그리움의 이랑사이

혹여 미움의 그림자 하나라도 드리워져 있다면

그리움 상처 안 입게 그 한 겹 벗겨내고

삶에 미움의 싹 키우지 않으리라

 

추억처럼 오랜 세월 강

밤바다 물결만큼 흘러간 지금

세상은 변하였지만

구절초 여린 잎 이슬에 젖어

진초록 풀숲에 앉아 계절을 맞이하고

 

추풍에 꽃잎 팔랑이는 산허리에

청청淸淸한 벌레소리 가을을 읊조릴 때

덧없는 하늘빛은 푸르고

그 곳에 순백의 목화는 피어

시인의 가슴 꽃향기에 젖으며 젖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