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뒷 베란다 구석 오래도록 방치해 두었던
검은 비닐 속 간택되지 못한 양파 하나
제 몸의 물기 다 내 주어 파란 싹 틔우고 있다
매운내도 말라버린 쪼글쪼글한 몸뚱이
제 몸 한 촉의 싹 밀어내는 질긴 생명력
나의 쪼그라진 감성에도 푸른 새싹의 시어들
밀어낼 수 있을까
한 계절 다 가도록 무심했던 나
게으른 잠의 한쪽 열고 기지개 펴본다


햇볕이 쏟아지는 창가
물컵 속에 초라한 몸 안치시킨다
시커멓게 들러붙은 얼룩의 더깨 벗어가며
하얀 생명줄 수없이 뿌리 내려
여왕처럼 앉아있는 모습,
아하 그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온통 초록의 색으로 대답하는 그것
햇볕의 입자들과 물의 분자가 갖는 꿈
그 꿈의 심지가 불을 밝힐때
내 시어도 새 살 돋아나듯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