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이근배

풀이 되었으면 싶었다.
한 해에 한번 쯤이라도 가슴에
꽃을 달고 싶었다.
새가 되었으면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목청껏 울고 싶었다.
눈부신 빛깔로 터져 오르지는 못하면서
바람과 모래의 긴 목마름을 살고
저마다 성대는 없으면서
온 몸을 가시 찔리운 채 밤을 지새웠다.
무엇하러 금세기에 태어나서
빈 잔만 들고 있는가
노래를 잃은 시대의 노래를 위하여
모여서 서성대는가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것일 뿐
가슴에 남은 슬픔의 뿌리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