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향

 

                            한주운

 

살아 온 시간보다

잊고자 했던 하루가 더 길어질 무렵

잠깐씩 맛보여 준 단비소식은

사막의 목마름  해갈(解渴)하기에는

가슴에 품은 그리움 녹이기에는

안타까운 진실의 위선 이었기에

애써 외면하고야 말았습니다.

 

 

밤송이 익어 툭툭 떨어질 때

누렇게 익은 들판을 빈 바람으로 거닐다가

하늘 아래 두 동강난 핏줄을 움켜쥐고

산천을 거꾸로 거꾸로 더듬으며

망각 속의  얼굴을 꺼내들고

참아왔던 설움이 불을 품어 냅니다.

 

 

평안남도 강서군 수산면 가현리 586번지

아버지의 고향,

쌀 한 말 등에 지고

자유찾아 꺼이꺼이 넘어 온 길

돌아갈 수 없는 길 되어 버린 지금

시간만큼 변색해 버린 기억 속의 어머니는

아직도 손짓하며 웃고 있는데

아버지는 오늘도 되돌아 보며 울고 있습니다.

 

 

점점 굳어져 가는 휴전의 길목마다

남겨둔 이정표 녹슬어 무너져 내리는 데

꿈 속에서 찾아 본 고향 집 언덕에는

떠나온 그날처럼  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버지 가슴에도 풍랑에 버텨온 그리움이 쓰러져

기약할 수 없는 현실 속에

한 가닥 파닥이는 생명줄을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