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운

<홉스골 가는 길>

홉스골 가는 오후
끈질긴 6월의 더운 바람에
내 그리움을 바람에 실려놓고는
그 사람 얼굴을 그려봅니다

어제를 다시 달리듯
몽골 하늘 높이에다
그 얼굴을 올려놓고는
그 사람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엔
나보다 먼저온 저녁해가 무슨 사연처럼
그 이름을 겹으로 겹쳐놓고는
벌써 붉은 물을 들입니다.

<슬픈 일>
-홉스골 하늘과 호수는 푸른 빛을 닮아 있었다 1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닮고만 사는 것인가 봅니다

손을 내밀어도 잡을 수 없고
바라보면서도 눈맞출 수 없고
온몸으로 감싸안아도 하나 될 수 없는
두고두고 눈물만 흘려야 하는
이룰 수 없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닮고만 사는 것인가 봅니다.

<보내 놓고>
-홉스골 하늘과 호수는 푸른 빛을 닮아 있었다 2

이렇게 시리도록 아플 줄 알았으면
너를 그냥 떠나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아프도록 울음 울 줄 알았으면
너를 그냥 가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울음 울며 몸부림 칠 줄 알았으면
너를 그냥 뒤돌아서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몸부림 치며 숨쉴 수 없을 줄 알았으면
너를 그냥 하늘 저멀리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내놓고 이대로 주저앉아
널 닮은 호수가 되었다, 푸른 멍이 든 채.

<이유>
-테를지에서 1

햇살이 아름다운 건
그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원이 아름다운 건
풀잎이 있기 때문입니다

숲이 아름다운 건
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놀이 아름다운 건
구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별들이 아름다운 건
밤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건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테를지 : 몽골의 국립공원. 초원과 산, 강과 나무와 암석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특히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이 인상적이며 들꽃 중에는 에델바이스, 아네모네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울란바타르에서 북동쪽으로 80km쯤 위치하고 있다.

<슬픈 향기>
-테를지에서 2

저녁이 유난히 긴 이곳은
자정이 다 되어야만
사연처럼 초승달이 뜨고
이깔나무숲의 뻐꾸기
나그네처럼 울음 우는 곳
얼마나 지났을까
어제의 이별 이야기를 시작하는
세상의 모든 별들이 모이는 곳

밤이 짧아 더욱 아픈 이곳은
희미한 달빛에서도
뻐꾸기 울음 소리에서도
별들의 얘깃 소리에서도
슬픈 향기가 난다
숨길 수 없는.

<눈물 편지>
-홉스골 호수 1

홉스골 호수는
눈물로 편지를 쓰나 봅니다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하늘,
매일 밤을
달빛에 눈물 적시며,
밤별들 몰래 숨죽이며,
6월에도 얼음 어는 사연을……

한낮이 되면 그 눈물 편지는
떠다니다 사라지겠지만
밤이면 호수는 다시
눈물로 편지를 쓰나 봅니다
오늘 아침, 그 눈물 편지를 보았습니다

홉스골 호수는
눈물로 편지를 쓰나 봅니다
답장은 바라지도 않는.

*홉스골 호수 : 몽골의 스위스로 불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청정호수이다. 길이가 200km 이상이고, 평균 폭도 40km가량 되며 가장 깊은 수심은 262m이나 된다. 크기는 경상도 정도이며, 자연림과 호수와 늪지대를 겸비한 곳이다.

<사랑>
-홉스골 호수 2

홉스골 호수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홉스골 호수에는
하늘만 있었습니다
그 호수에 돌을 던지면
하늘이 흔들립니다

내 안에는
내가 없었습니다
내 안에는
당신만 있었습니다
내 안에 꿈을 던지면
당신이 하늘처럼 흔들립니다

호수는 하늘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눈>
-홉수골 호수 3

너를 떠나보내고 눈물이 난다

약속 없는 길,
약속 없는 사랑,
약속 없는 이별,
약속 없는 아픔,
약속 없는 그리움,
……
……
홉스골 하늘과 호수
슬프디슬픈 사랑

홉스골에는
6월인데도 눈이 내린다
눈물이 얼어.

<미안하다, 사랑한다>
-홉스골 호수 4

홉스골 호수에 가면
길이 있다가도 다시 없어지고
길이 없다가도 다시 생겨난다
그 길 위에 네가 있고
그 길 위에 내가 있다
어제는 놀이 호수에 온몸을 기대더니
오늘은 파랗게 시린 멍을 풀어놓는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긴 하루의 끝,
깊은 바닥으로 너를 던져 버렸다.

<새벽에>
-홉스골 호수 5

이별보다 아픈 것은
더한 그리움이었다

보낼 줄 아는 것도
떠날 줄 아는 것도
아플 줄 아는 것도
그리울 줄 아는 것도

홉스골의 달은
시리도록 아픈 눈물을 흘린다

이별보다 아픈 것은
다시 그리움이었다.

<아픈 일>
-홉스골에서 1

세상에서 아픈 일은
손을 내밀어도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더 아픈 일은
온몸으로 감싸안아도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더더 아픈 일은
바라보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더더더 아픈 일은
평생을 두고두고 바라만 보며 눈물만 흘리는 것입니다
시린 홉스골 하늘과 호수처럼.

<내 사람>
-홉스골에서 2

떠나야만 아픈 줄 알았습니다
보내야만 아픈 줄 알았습니다
서러워야만 아픈 줄 알았습니다
그리워야만 아픈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아픈 것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침 햇살이 너무 눈부셔 아프고
파란 하늘이 너무 맑아서 아프고
하늘 닮은 호수가 너무 시려 아프고
호숫가 주저앉은 민들레 노란 꽃잎이 아프고
이곳에도 당신과 나,
그리움을 진 채 있다는 것이
이렇게 아픈 것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 사랑>

지금껏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껏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껏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껏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눈물나는 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껏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껏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껏
이별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아픈 일을 알았습니다
내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이름, 내 사랑.

<빗속에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빗속에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연두 빗줄기 사이로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철 이른 국화를 바닥에 깔고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너를 보내고
온몸으로 울음 운다

빗속에 이별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다
연두 빗줄기 사이의 이별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다
철 이른 국화를 바닥에 깐 그런 이별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이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너를 보내고
서러움 비가 되어 내린다.

*홉스골 호수
홉수굴 누르(Nurr)라고도 한다. 면적은 2,760㎢, 둘레는 380㎞이다. 수심은 최고 262m로 중앙아시아에 있는 호수 가운데 가장 깊고, 호수 전체 면적의 70%가 100m를 넘는다. 그러나 호수 둔치 쪽에서는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수심이 얕다. 동서 길이는 36.5㎞, 남북 길이는 136㎞이며, 전체적으로 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다.

몽골 북서쪽 해발고도 1,645m의 고지대에 위치하며, 호수의 북쪽 끝은 러시아와 경계를 이룬다. 민물(담수) 호수 가운데 세계에서 14번째로 크며, 세계 담수 총량의 1%를 차지한다. 1월 평균 기온은 -22.6℃, 7월 평균 기온은 16.2℃이며, 1~4월에는 얼음으로 덮여 있다.

96개의 크고 작은 강과 내[川]가 모여들어 거대한 호수를 이루지만, 출구는 에진강(江)이 유일하며, 이 강을 따라 세계 최대의 담수량을 자랑하는 바이칼호로 흘러든다. 수정처럼 맑은 물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 거대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주변의 타이가 삼림과 온대 초원(스텝), 북쪽의 사얀산맥(최고 3,491m) 등 천혜의 자연조건이 어우러져 일명 '몽골의 알프스', '몽골의 푸른 진주'로 불린다.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주변 지역과 함께 1992년 몽골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호수에는 민물 연어(타이멘)를 비롯한 각종 어류가 서식하고, 주변의 삼림에는 큰뿔양·아이벡스염소(야생염소)·와피티사슴·순록·사향노루·큰곰(갈색곰)·스라소니·비버·늑대·말코손바닥사슴 등 68종의 포유류와 244종의 조류, 60여 종의 약용식물을 포함한 75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한다.

인공시설은 거의 없지만, 얼음이 녹았을 때는 카약이나 유람선을 타고 수정처럼 맑고 푸른 호수와 빼어난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고, 현지의 유목민 거주지나 순록을 방목하는 모습 등 빼어난 자연 경관을 만끽할 수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