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바다  
-해운대에서

                                                                                 정소현

모든 일상을 던져 놓고
흔들리던 배에서 내려
겨울 밤바다 앞에 선다
수십 년 잠들었던 그가 달려와 포옹을 한다
어둠과 함께

옛 모습 그대로, 모습에 숨이 멎는다
옛 모습 그대로, 노랫소리에 귀가 먼다
옛 모습 그대로, 모래알은 발아래에서 감미롭다

누더기 옷을 벗기고 날개를 달아준다
밤바다, 밤 파도, 밤 모래밭, 얼마동안이나
날며, 바라보며, 걸으며,
느꼈을까, 들었을까, 만져보았을까,
목마름에 물이 가득 차오른다

재회는 말이 없다
바다가 내 안으로 들어오고
밤은 내 안으로 스며들고
나는 그들 안에서 감아 놓은 시간을 푼다





희망을 위한 협주곡

                                                                        정소현

겨울비가 내린다
다정한 비는
빈 들녘
까칠하고 다 말라버린
우리들의 가슴, 잿빛 목마름에
입맞춤을 한다
어서 일어나라고

황량한 마음이
죽음처럼 흩어진 자리에
삶의 무게가
웃음을 앗아간 자리에
노래를 부른다
일어나야 한다고

겨울 들녘에서
남모르게 흘러
얼어붙은 모든 눈물에
겨울비는
결국 하나가 되고 만다

허무한 심연 속에 있는 꿈
햇살 아래에서
눈을 뜬다.




그녀를 위한 발라드

                                                                       정소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신록이구나
나누어서 서로 가벼워지자
아껴주는 마음에만 집중하고
기다림이 길어진다 해도
이별이 아님에 손을 모으자

마음 안에 머문다는 것
생각 안에 산다는 것
이보다 가까운 거리는 없다
꽃밭을 일구고 꽃길도 열자
꽃그늘, 노을빛도 초대를 하자

그리고 젖은 깃털을 털고
비상을 하자
그곳은 어둠을 밀어 내는
사랑의 여행지
어제는 첫눈, 오늘은 비가 내린다.





작은 평화

                                                                        정소현

 
해질 무렵에는
너그러움이 땅을 젖게 한다
경계가 무너지고 감싸 안음이다
 
하늘은 홍조를 띄고 연인이 되고
강물은 노을빛 치마를 두르고 어머니가 되며
구름은 하늘에서 내려와 정겨운 이웃이 된다
 
이것만으로도 잔잔한 호수인데,
이것만으로도 하얀 꽃밭인데,
 
비행기는 흔적만 남기며 소리 없이 지나가고
전철은 강물 속으로 거북이처럼 걸어간다
빌딩꼭대기는 어스름 속에 각이 둥글어지고
멀리 보이는 산은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인자하다
 
이들과 함께 있는 한 사람
소중한 이 나라의 딸이 되고
마음은 눈물겹도록 시리다.




 벗에게

                                                                             정소현
 
 
늘 그대를 사모했지만
마음 한 번 전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눈이 내립니다
밤 깊은데
혼자 좋아했던 마음 숨길 수 없어
음악이여!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대는
입안의 짠맛을 솜사탕이게 했고
마음의 매듭은
풀어주어 느슨하게 했지요
차가운 가슴은
그대 따스한 가슴이 안아 주었습니다
 
생각의 모서리에 입맞춤은
별이 되게 했고
만개한 꽃이거나 꽃몽오리 일때에도
서로 볼 수 있도록 키를 맞추어 주었지요
 
낯설어 당황 할 때엔 친절을 베풀어 주었고
익숙한 모습으로 내 옆에 있어주었지요
내 자유롭지 못한 영혼을 어여삐 보고
그 영혼에 날개를 달아 주기도 했지요.
그대는.
 
이 모든 고백을
오늘에서야 합니다.
 
- 그대를 언제나 사모한 벗으로부터-



惠洋 정소현



*월간<문학공간>으로 등단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광진문인협회 회원.
*한국공간시인협회이사, 백양문학 부회장.
*시낭송가. 시낭송지도자.
*문학공간상, 좋은문학작가상 수상.
*<시집> 또 가을이 오나 봅니다. 낡은 자전거의 일기
         그대를 위한 협주곡 외 공동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