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 :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시낭송가협회, 백양문학회회원
        새 한국 문학회, 시문회 회원
        시낭송가, 동화구연지도교사
        <공저> 한국대표명시선집, 아름다운 반란등

        
    
1. 봄, 그 어느날 / 김영숙

짙은 안개 속에 숨어있던
자잔하고 가늘고 긴 꽃 대롱에
소망의 꽃잎을 피운다

내려다 보이는 강언저리
늘창 불리 우는 소리
천년의 역사가 흔들리듯
푸른 숨결이 아른다

봄볕에 녹는 땅에 발자국 찍히고
도란거리는 얼굴들
저마다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더듬거리며
숨벅이는 사랑을

2. 초 여름에 / 김영숙

밤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먼 산을 덮고 있다
달콤 텁털음 한 향기가
가슴 속까지 스며든다

탐스러움을 자랑하던 모란은
빨간 눈망울을 남기고

낮 달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늘 가지에 걸려 있다

장닭이 홰를 치면
암탉은 열 서너 개의 알을 모다 놓고 나와
한 자박 배설하고
급히 배불리고
딩겁을 해 둥지로 들어간다
제 새끼 만들기에 날개를 편다


3. 가지나무, 새 / 김영숙

감은 보랏빛으로
어긋나게 자란 잎
거기, 왜 잔 가시는 꽂혔는지

자주 감자 빛 꽃봉이
초롱처럼 대롱이다
아기 육손이 펴듯 환히 웃는다

보명주 기울이며
농자색 가자(架子) 따서
아즉아즉 씹어 삼키다
어! 저 건너 할미새
‘가지나무에 목멜라’
후다다닥
쫒아가는 걸음 걸음

4.감자 먹는 날 / 김영숙

왼손에 줄기 잡고
호미 들어 후벼내니
네 얼굴 내 얼굴
마주 보며 매달렸다
한바탕 웅성거리며
바구니에 숨어든다

두레상 양푼에
옹기종기 익힌 몸이
소금 접시 들락날락
코구멍 벌렁거린다
둥근 입
앗! 뜨거워라
소리도 못 지르고

5. 가을이 여기에 / 김영숙

다갈색 갈대밭에 개개비 휘파람 소리
원두막 사랑싸움 불이 붙어 눈이 멀고
때마침 맞은바래기 매미는 샘을 낸다

콩 꼬뚜리 탱글탱글 양수 없이 속 채우고
옥수수수염 턱 아래로 점박이가 속삭인다
한나절 흔들거리는 눈부신 짧은 햇살도

메뚜기 긴 볏잎을 이곳저곳 갉아먹고
밤송이 입벌리고 들꽃에 눈길 준다
실개천 물고기들은 돌 틈에서 꼬리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