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규 (승주)
                전남 순천 (상사) 출생
        91’공무원 창안 “은상”수상(정부근정훈장포상)
        지구문학으로 등단, 송파시동인회부회장
        현. 경찰학교 강사(수사연구관)
        저서: 키 있는 인생 등 수필집 3권 동인시집 3집 발간                    



낙      엽

                                                              박영규


나무들이 붉은 화장 지우고
홀가분한지
질주하는 바람 앞에
생각의 이파리를 던져 놓고
망둥이 미꾸라지처럼 마구 뛴다


엊그제 그토록 치장한 모모
우쭐거리며 곁눈질도 하더니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세월에는
이판사판 심정인가


촉촉한 살결 보는 것도 눈부셨는데
어느새 겉주름이 속주름이 되었다
삶도 사랑도 조금씩 주름 잡혀
우쭐대다가 쪼그라드는게 인생인가



노     을

                                                          박영규


우리 인생의 가을은
저토록 짧은 낙조의 여행인가?


해질녘 황홀에 잠길 수도 있지만
큰 산, 작은 섬 사이로 떨어지는
그는 이 땅 어디서도 볼 수 있겠구나


돌아가는 길
사느라 맺은 모든 걸 풀어놓는
언제나 서편으로 스러지는 핏벌인가


발버둥치다가 끝내 순하게
까만 어둠으로 찾아드는
마지막 터뜨리는 인생의 불꽃인가



베     개

                                                    박영규


간밤에 외손녀 지연이는 잘 잤나?
딸 착희가 깜박 놓고 간 아기베개
자고 나니 내 머리맡에서
평화로운 아기천사 웃음을 뿜어내고 있네

발버둥치다가 옹알이도 하다가
응가를 해도 샤넬 No.5 향수보다 향기롭고
목욕하고 머리빗은 얼굴만 어른거리네
응아응아 노래가 귓전을 맴도네

밤마다 내 옆에 두고 자는데
손녀의 보고픔이 가슴에 가득한데
지연이는 언제쯤 이 맘을 알까
아마도 텔레파시가 통하는 건 아닐까?

베개 하나에 아기의 온갖 재롱 다 들어있어
가슴은 사랑으로 꽉 차, 터질 것만 같구나
착한 내 딸 착희보다 더 착하고 건강한
이 땅의 자랑스런 딸로 자라다오


자나깨나

                                                   박영규


손주는 주말마다 오는데
왜 자꾸 보고만 싶을까
손주 올 때쯤이면
왔다 갔다 안절부절
님을 만날 약속하고 기다리듯
설레는 시간은 목마르다


녀석을 안고 뽀뽀하고
껴안고 뒹굴며 신명 나네
보고 또 봐도 이쁘기만 한데
님과 헤어질까 조바심치듯
굴러가는 시간을
멈추지 못해 안달이네






군자  약국

                                                       박영규


귀가길 약국에서 사준 비타민을
먹을 때마다 내 맘 속 열기가 온몸 퍼지고


그는 어디서 와서 내 것이 되어
내 마음을 위태롭게 하는지


처음 그리움이 있다고 곁눈질이 있었다면
소식도 기다리지 않는데


말없이 사주고 간 매정한 그는 어디까지인지
순간의 스친 길인지 기나긴 미로의 길인지


오늘도 나를 애태우며 시간을 머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