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해병대소위 시절>

* 그녀의 이름은 김문중!!!>>>>>>그녀는 지금 한국시낭송협회의 회장직을 맡아 헌신하고 있다. 그녀와 나의 만남은 97년도 국립현충원에서 였다. 국가보훈처에서 모집한 현충일 추모헌시가 당선되어 행사 당일 낭송되는 싯점이었다. 그녀는 일찍히 하얀소복을 입고 행사장에 나타났으나 나는 뒤늦게 행사장에 도착하였음으로 제자리에 앉지 못햇다. 그녀와의 인연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으나 10년이 가깝게 상면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장교였으며 전역을 앞둔 처지라서 동해에 있는 해군1함대에 내려와 전역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물론 나는 95년도에 시인으로 등단을 했지만 나의 시가 아니 나의 문학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기가 불안했고 그런 시 한 수가 나의 곁을 떠나 만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인지 의문스러웠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해 평생동안 간직할 영광을 안은 셈이었다. 김문중씨 역시 국가행사에 시를 낭송하는 기회를 가졌음으로 영광은 두 사람의 지분인 것이다.
그런 그녀가 내게 전화를 했다. 가끔은 나의 서재인 카페(cafe.daum.net/poemtree)로 방문을 하여 잡스런 글을 섬렵하기도하고 더러는 전화로 안부를 전하지만 그녀에게 전화를 드리지못했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서 내가 잠수한 것이리다. 그녀는 연말을 기하여 강릉으로 여행을 한다니 반가운 일이 아닌가. 한국시낭송가협회의 송년행사로 이곳 강릉바다를 찾아 오시겠다니 또한 황금찬선생님과 함께라니 기다려진다.

* 그녀는 나에게 진한 커피맛을 선물했다. >>>>>
헌충일행사를 마치고 어느 날 보훈처장(장관)이 김문중씨와 나를 여의도로 불렀다. 수고로운 마음으로 점심을 대접할 심산이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여의도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받는 자리에서 알고보니 장관이 해병대 장교출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가 나의 해병대선배가 되는 것이었다. "선배님 인사드립니다."" 그래 네가 해병대장교출신인가?" 그렇다면 술을 마시지...."장관과 나는 술잔을 주고 받았다. (선배님이라며) 그런 통하는 사이는 해병대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를 알고보니 세상에 전두환시절때 아웅산폭파사건 때 살아남은 자 ? 그런 그에게도 안부를 전하지 못했다. 지금은 어디서 살고 계시는지 내가 부끄럽다.

* 시 한 수로 반가움을 대신한다.

그녀의 약국에서^♡^


시장을 지나면/
보고픈 그녀가 자주 들리는 약국/
그곳에 자주 가는 나/
상사병이 들었는지 아니면 /
이 가을병이 도졌는지 모를 일이다./
단풍같이 향기로운 갈색머릿결과/
사과같이 진 붉은 입술의 그 약국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

그녀가 올 때마다/
나는 짙은 밤색의 염색약을 사면서/
그녀의 가을빛 머릿결을 생각한다./
약국 출입문을 열며 들어설 때마다 /
약사는 무슨 약을 지어/
줄 건가 묻지만 나는 고개를 흔든다. /
그리고 진열대에 그녀의 긴 /
머리카락이 박혀있는 단돈 오천 원짜리 /
진갈색 염색약을 집어 들곤 한다./
그녀는 한 삼십대 후반쯤 들어 보이는데/
누구의 아내인지 나는 모른다./
그녀가 보고 싶으면 그냥/
그 약국에 가곤 한다./
나는 언제쯤 그녀의 머릿결처럼 갈색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염색하려나 걱정이다./
그녀는, 가을을 염색한 머릿결을 가졌지만/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만 보아도/
행복이다.//

그녀로부터 느끼는 /
사랑의 자연스러움처럼/
그렇게 가을은 흘러가는데,/
이 가을을 붙잡아 둘 재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