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당진구 송악면 부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주택

지방문화제 제 107호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당진군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소설가이자 영화인인 심훈(沈熏)의 문학 산실(産室)이었던 집으로, 대지 661㎡에 건평 62㎡(18.7평)인 아담한 팔작지붕의 목조집이다.

심훈은 1932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당진으로 내려왔으며, 독립하여 살고자 이 집을 직접 설계하여 필경사라 이름하였다. 필경사라는 옥호는 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필경사 잡기》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장조카인 심재영이 다시 사들여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희사하였다. 한국 농촌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상록수》(1935), 《영원의 미소》《직녀성》 등이 여기에서 집필되었다.


필경사〈사진 위〉는 1934년 신문에 연재하던 장편소설 직녀성의 원고료로 심훈이 직접 설계해서 지은 집필실이다. 필경사 筆耕舍 는 한자 뜻풀이로 보면 ‘붓으로 밭을 일구는 집’이다. 심훈이 쓴 시 가운데 실제로 ‘필경’이 있고, 집 이름도 그 시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이런 일화가 있다. 심훈이 집터를 잡기 위하여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아끼던 상아 파이프를 잃어 버렸다. 그것을 찾기 위하여 그 때까지 돌아다닌 곳을 다시 되짚어 다니다가 빠트렸던 상아 파이프를 찾은 곳이 지금의 필경사 자리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필경사 뒷동산에는 대나무가 울울하고 멀리 시야를 던지면 장장 12.7㎞에 이르는 서해대교와 아산만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건물은 남남동향에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바로 앞에는 상록수문화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필경사 앞에는 이 집의 내력을 적은 안내문도 잘 만들어져 방문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집 앞에는 심훈이 1934년 직접 심었다는 상록수 한 그루가 여전히 남아 울창한 잎을 피워 올리며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다. 심훈은 필경사에서 상록수를 쓰기 시작해 52일만에 탈고했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 15주년 현상모집에 당선된다. 심훈은 이때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한다.
필경사 일대에는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실제장소나 지명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