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시 / 이수인곡/ sop 신영옥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작가소개]
이병기(李秉岐, 1892~1968). 시조시인. 국문학자. 호는 가람(嘉藍).
전북 익산출생. 한성사범을 거쳐 주시경이 개설한 조선어강습원 수료.
우리말에 대한 그의 훈련이 이때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그의 창작 활동은 주로 시조에 국한된다.
시조를 위한 그의 활동은 세 가지로 나누어 논의될 수 있다.
첫째. 아직도 우리 시조가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때 그 형태 속에
현대적인 서정을 담아 서정시조의 길을 타개한 것이 그 하나다.
둘째. 가람은 육당 최남선이나 김영진 등과 함께 시조부흥을 위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도 힘쓴 바 있다.
셋째. 가람이 우리 현대시조에 끼친 공적으로 후진의 발굴,육성도 잊을
수 없다. 가람이 뽑은 작가가 김상옥,이호우,이영도 등으로 그 후
이들은 모두 한국 현대 시조의 새 국면을 타개하는 주인공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병기를 '현대 시조의 아버지'라 일컫기도 한다.
시조집에 <가람 시조집>,저서에 <국문학 개론>,<국문학 전사>(공저),
<가람문선> 등이 있다.


  나오라

일즉 님을 여희고 이리저리 헤매이다
버리고 던진 목숨 이루 헬 수도 없다.
웃음을 하기보다도 눈물 먼저 흐른다.

다행히 아니 죽고 이 날을 다시 본다.
낡은 터를 닦고 새 집을 이룩하자.
손마다 연장을 들고 어서 바삐 나오라.


난초(蘭草)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주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리라.


<아 차 산>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 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쪽이 발끝에 부딪히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구름

새벽 동쪽 하늘 저녁은 서쪽 하늘
피어나는 구름과 그 빛과 그 모양을
꽃이란 꽃이라 한들 그와 같이 고우리.

그 구름 나도 되어 허공에 뜨고 싶다.
바람을 타고 동으로 가다 서으로 가다
아무런 자취가 없이 스러져도 좋으리.